개별적인 아이돌에 대한 평가가 없으니, 검색엔진의 친절한안내로 들어오신 분들은 잘 생각해보고, 읽어주시길 권한다.
2011년 읽은 책 중에 최고를 꼽으라고 하면 문영미 교수님의 "디퍼런트"를 권한다. 디퍼런트는 마케팅에 관련한 책이지만, 독특한 글쓰기와 다양한 생각과 관점을 결합시키는 글쓴이의 탁월한 능력이 넘쳐나 여러 분야의 삶에 적용해볼 수 있다.
갑자기 몰아친 한류의 세계화 때문인지 거의 모든 미디어는 아이돌이 차지하고있다. 나이가 들어선 삼촌팬인지라 아이돌을 구분하지 못하는 내 자신을 돌아보다가, 아이돌의 차별화가 동일화를 이끌어낸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이 생각은 오직 문영미 교수의 "디퍼런트"의 주요 테제였다. "디퍼런트"의 바탕 생각을 아이돌의 차별화와 동일화에 대해 확장해볼 생각이다.
디퍼런트에서 문영미 교수는 다음처럼 책의 목적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동일함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차별화의 존재를 발견해 내고자 한다." - 9쪽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는 아이돌 그룹들은 각자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다른 그룹들과의 차별화를 통해, 새로운 것을 찾는 팬들을 모은다. 아이돌 그룹의 시작을 "서태지와 아이들"로 잡으면 20년이지만, 핑클이나 H.O.T 처럼 기획사가 주도하는 그룹들이 나온 시점을 출발점으로 잡으면 거의 10여년에 넘게 차별화가 시도되었다. 10여년이 넘는 차별화라면 어느 정도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으리라.
아이돌 그룹들의 인적 구성을 살펴보면, 대부분 4명 이상으로 구성된다. 가끔 3명이 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4명에서 7명 사이가 주를 이룬다. 왜 2명이나 3명은 없는 것일까? 구성 멤버의 캐릭터를 어느 정도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돌 그룹이므로 노래를 잘 하는 1명은 꼭 필요하고, 최신 음악 흐름에 맞게 랩을 하는 멤버도 필요하다. 한류의 가장 큰 특징인 퍼포먼스 안무를 위해서 춤을 잘추는 멤버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팀의 색깔과 분위기를 책임지는 "리더"가 마련되면 가볍게 4명이 된다. 추가로 깜찍한 동생역을 담당할 막내가 되면 기본 5명의 그룹이 된다. 춤이나 음악을 담당하는 멤버가 추가될 수 있다.
왜 멤버들의 전문화를 추구하는 것일까? 아이돌 그룹은 기획사가 주도하고 있고, 특정한 음악적 색깔을 추구하는 아티스트가 아닌 공연을 할 때 역할을 하는 멤버가 필요해서다. 하나의 상품으로 그룹을 기획하다 보니, 팬들의 관심을 미리 조사해서, 멤버들의 특징과 그룹으로서 특징을 최대한 마케팅으로 포지셔닝해야하는 "실패하지 않는" 기획을 해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아이돌 그룹들을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거나, 그들이 노출되는 미디어나 예능 프로를 보지 않는다면, 누가 어떤 그룹인지 구분할 수 없다. 기획사들이 차별화를 통해서 팬들에게 선보인 아이돌 그룹은 차별성을 잃어간다.
두번째로, 기획사가 주도하는 아이돌 그룹은 오랜 시간 연습생을 훈련시킨다. 이때 "보컬 트레이너"가 등장한다. "보컬 트레이너"는 연습생들의 "발성"부터 노래를 할 때 "감정"까지 노래하는 방법 전체를 훈련시킨다. 연습생들이 "될 성 싶은 떡잎"이긴 하지만, 가다듬어지지 않아 훈련이 필요하다. 꾸준한 훈련과 연습은 어느 분야에서나 필요하다. 내 느낌에는 음악의 기본 재능이 준비되지 않은 "스타"가 될만한 연습생들 모두가 "노래"를 잘 할수는 없다. 노래를 부르는 그룹이 모두 다 노래를 뛰어나게 잘 할 필요는 없겠지만, 평균 이상은 해야 한다. 트레이너의 존재는 연습생들을 평균 이상의 노래 실력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어디까지나 추정이다). 노래와 음악에 뛰어난 지망생들의 장점을 더 살려주고, 약점을 보완해주는 코치가 아니다. 평균 이상으로 노래를 잘 하도록 연습한 그룹들의 노래만으로 그룹을 구분하기 어렵다. 거칠고 동적인 안무까지 곁들여진 무대에서 거친 호흡으로 노래를 꽤 잘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라이브를 소화하는데 중점을 둘 수 밖에 없다. 평균 이상 정도의 음악은 차별화를 약화시키고 구분을 어렵게 만든다.
멤버의 다양한 구성과 "평균 이상 음악" 공연 때문에 아이돌 그룹은 노래 한곡을 혼자서 다 부르지 않는다. 멤버들이 소절을 짧게 나누어 부르고, 중간에 래퍼가 나오고, 또 중간에 멋진 댄스 시간을 넣는다. 이 현상은 모든 아이돌 그룹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 70-80의 그룹들은 구성원 모두가 합창이나 아름다운 화음으로 음악을 빛내거나,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소통의 구조를 가졌다. 이런 음악 구성이 아닌, 멤버들이 잘 할 수 있게끔 노래 소절들을 배치하고 춤으로 생긴 거친 호흡을 돌아가면서 가다듬는 여유를 만든다.
실제 무대와 달리, 뮤직 비디오나 TV방송의 카메라의 움직임 좀 다른 양상을 띤다. 공연중인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을 집중해서 보려고 해도 쉽지 않다. 몇몇 동영상을 보아봤지만, 대부분 한 화면이 3-4초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A를 정면에서 보여주고, 45도 각도에서 B를 보여주고, 먼 거리에서 B-C를 보여주고, 다시 반대방향에서 D를, 먼 거리에서 멤버 전체를 보여준다. 이런 방식으로 멤버들의 모습이 골고루 순환한다.
노래 한곡이 4분이라면, 240초다. 멤버가 5명이고, 4초 화면이 바뀐다면 멤버당 12번 정도 화면에 나온다. 동적이고 화려한 화면을 전달하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어지러울 뿐이다.
아이돌 그룹이 춤추는 것을 보면 화려하다. 아이돌을 따라서 안무를 따라하는 것을 커버댄스라고 부르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어떤 그룹에 대해 설명을 들은 적이 있는데 손의 방향과 위치, 각도까지 모두 맞을 때까지 연습을 하고, 이게 되어야 무대에 선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화려하고 동적이지만, 절제된 안무를 모두들 한다. 가끔 귀엽거나 앙증맞은 안무도 있다. 남,녀 아이돌 모두 절제된 안무는 차별화를 없애 버린다.
디러펀트에서는 이런 경향을 동종의 단계로 설명한다.
'카테고리가 성숙해 나감에 따라 제품들은 이종 heterogeneity의 단계에서 동종 homogeneity의 단계로 진화해 나간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제품들 사이의 차이가 완전히 사라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 차이의 경계가 점점 희미해진다는 뜻이다.
이종의 단계에서 동종의 단계로 나아갈수록, 그 카테고리 내에서는 문제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오직 전문가들만이 이 제품들간의 차이점을 인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25쪽
앞에서 좀 지루하게 살펴보았지만, 10년 가까이 약진하는 아이돌과 한류의 세계화는 이종 단계에서 동종 단계로 진화해왔으며,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다. 문교수의 지적처럼 오직 아이돌에 열광하는 젊은 10,20대 만이 아이돌 그룹간의차이를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한류의 세계화를 부르짖고, 정부가 나서서 도와야 한다는 말은 틀렸다.경계가 불투명해진 동종화의 단계를 밟고 있다면, 앞으로 어떻게 차별화를 더 가져갈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2011년 매출 100억을 했다는 "아이유"의 돌풍은 제대로 된 돌파구를 알려준다. 모두가 기획사를 통해서, 기획사가 주도해서 "그룹"으로서 아이돌을 하고, 음악보다는 식스팩과 댄스를 연마할 때, 아이유의 색깔을 연구하고 빛낼 방법을 찾았다. 이게 디러펀트가 아닐런지.
열성적인 소비자들마저도 카테고리 내부의 제품들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유효한 차이점을 발견해 내지 못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면, 그 카테고리는 극단적인 진화의 단계에 도착한 것이다. 그러한 경우, 소비자들은 아주 단순한 제품을 선택하게 된다 - 28쪽
아이돌에서 차이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극단적으로 진화했기 때문에, 팬들은 아주 단순한 솔로 가수 아이유를 선택했을 뿐일까? 내가 아이유만 좋아해서 편들기하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한 단락만 인용한다.
오늘날 비즈니스 세계에서 이와 같은 혼란이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장 먼저, '경쟁을 통한 차별화 competitive differentiation'의 허구성이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치열하게 경쟁을 추구하다 보면 차별화는 자연스럽게 확보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로 돌아가고 있다. 오늘날 기업들은 스스로를 경쟁자들과 구분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차별화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의 제품과 서비스는 점점 더 비슷해져만 가고 있다.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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