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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나

토론이 잘 이루어지려면

통계의 미학 97쪽

많은 신문 기사들에 대해서, 특히 정치 기사에 대해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불만들 중의 하나는 사실과 의견이 구별되지 않고 뒤섞여 있다는 점이다. 사실은 사실 그대로 말해 주고, 그 다음에 이와 구분하여 언론사 또는 기자의 의견을 말해야 하는데, 특히 정치적인 이슈를 다루는 많은 기사의 경우 그 둘이 구별이 잘 안 된다.

사실과 의견의 구분은 비단 정치를 다루는 신문 기사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회사에서 업무를 보고할 때에도 그렇고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시험 관문인 논술에서도 그렇다. 모든 토의에도 위의 논리가 적용된다. 먼저 사실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고 그 이후에 이를 근거로 가치 판단 등에 따라 토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진행되지 않는 이유는 각자 주장이 완고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가장 기본적인 원인은 토의를 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것'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견과 그 의견 공유의 기본은 바로 사실 파악에 있다. 여기서는 사실을 파악하고 공유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실을 파악하고 공유하는 방법은 통계학에서 기술통계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매우 중요하다.

끝없는 주장, 그 종류부터 알아보자

사람들이 토의를 벌이는 목적은 합의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어떤가? 자신의 주장만을 관철하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는가? 사회, 경제, 정치 문제에 대해 벌이는 TV의 심야토론이나 회사에서 업무 프로젝트를 놓고 벌이는 토론에서 자신의 주장이 어떤 것인지 고려하지 않고 목에 핏대만 세우지는 않는가? 그런 토론을 보다 보면 의외로 양측의 대화가 전혀 공유점을 찾지 못하고 공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왜 토론은 진전 없이 공전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사실' 확인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자.

TV의 심야 토론이나 회사에서 업무와 관련된 토론에서 나오는 주장들을 꼼꼼히 보면 다음과 같이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규범적 주장'이다. 즉, 당위성 또는 정의에 관한 주장이다. "비정규직은 없애야 한다", "고용의 유연성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다. 이런 주장들의 경우는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기보다 현실적인 제약을 고려하여 합일점을 찾아야 한다. 만약 패널들이 비정규직을 없애는 것 외에 어떠한 대안도 수용하지 않으려는 입장이라면 토론은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없다.

규범적 주장과 구별되는 것이 '실증적 주장'이다. 실증적 주장은 2가지로 나뉜다. 실증적 주장 중 하나는 '뭐뭐하면 뭐뭐하다'라는 식으로 인과관계를 주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교회가 세속화 되면 쇠퇴한다' 같은 주장이다. 즉 어떤 원인에 의해서 특정 결과가 발생할 것이니, 원인에 해당하는 것을 하자 또는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토론에서는 이론의 현실적 타당성과 효과의 크기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필요 시 이에 대한 보완 대책의 필요성 및 효과에 대해서도 다루어진다. 또 이론의 전제조건의 현실성에 대해서도 논의가 되기도 한다.

세번째는 실증적 주장의 하나로 '현황의 파악'에 관한 부분이다. 예를 들면 '교회 세습이 있다/없다', '교회 재정이 투명하게 관리되고 있다/아니다' 등 현황에 대한 인식 부분이다. 이런 주장은 이론까지 가지는 않고 현실의 상태에 관한 인식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각기 다른 종류의 주장이 서로의 영역을 벗어나서 충돌한다면, 그 토론은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산으로 가게 된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제는 실업을 유발할 것이다'와 같은 인과관계에 대한 '실증적 주장'과 '사회정의를 위해 최저임금제를 보장해야한다'는 '당위적 주장'은 직접적으로 합의가 되기 어려운 서로 다른 주장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