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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나

실패한 40대가 주는 교훈

http://m25.co.kr/ezArticle.php?query=view&code=265&no=2223&Hosu=52 에서 펌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열심히 달리는 건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다.
2534 시기를 잘 살아야 40대가 행복하다.
실패한 40대 선배의 고백을 들으면 정신이 바짝 들 것이다.

에디터 양이슬  포토그래퍼 최해성  글 마정건(<30대 직장 생활법칙> 저자)


왜 2534의 삶이 중요한 건데?

고작 10년이 평생을 쥐락펴락한다면 지나친 기우일까. 그러나 필자와 주변 사람들을 보면 그 10년이 삶 전체를 통째로 잡아 흔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 10년이란 직장인들의 평균적인 취업 시기인 25세부터 34세까지다. 2534 시기는 많은 기회가 주어지며 마음껏 역량을 발휘해도 거칠 것 없는 때다. 실수를 해도 너그러이 용서되며 상사의 불편부당한 언사도 젊기 때문에 곧 잊어버릴 수 있다. 열정은 뜨겁고 기초 체력은 튼튼하며 두뇌 회전도 최고조다. 그러니 2534 시기에 안정적인 기반을 닦아 두어야 한다. 지나면 늦다.


고개 숙인 40대 직장인의 고백

2534 시기가 실패로 점철된다면 그 이후의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 필자와 주변 지인들의 경험담을 토대로 정리해 보겠다.

첫째, 호주머니 사정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실패의 점철은 재정의 파탄이나 다름없다. 연속되는 실패 속에서 재산이 모아질 리 없고 더 나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뛰다보면 비용이 든다. 게다가 부양할 가족까지 있다면 숨 가쁜 생활의 연속일 수밖에. 요행히 좋은 직장을 구했더라도 금세 살림이 피지 않는다. 그동안 벌어 두었던 돈을 써버렸기 때문에 보충하자면 시간이 필요한 건 당연지사 아닌가.

둘째, 대인관계가 위축된다. 대인관계는 일방통행이 아니다.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지속되는 법. 얻어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자격지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괜히 주변 사람들의 눈총이 따갑다. 지인들과의 연락이 뜸해지면서 아예 두절되더니 남는 것은 가까운 친구뿐이다. 그나마 친구들도 가족사를 꾸리느라 바쁠 것이니 어쩌다 한번 만나게 된다. 외로움은 덤이다.

셋째,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줄어든다. 남는 시간이 있다면 먹고살 궁리를 해야지 가족과의 단란한 시간이란 배부른 소리다. 한창 사랑받고 자라야 할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하니 못난 아빠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아이들이 이런 아빠를 부디 불쌍히 여겨 먼 훗날 외면하지 않기를.

넷째, 아내와의 말다툼이 잦아진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생활, 늘어가는 아이들의 교육비, 다른 가장들과의 비교, 끊임없이 밀려드는 공과금과 공포의 부조금(40대에는 부조할 일이 많아진다. 어른들이 돌아가실 시기다) 따위가 원인이다. 다툼이 없다면 아내는 세상없는 착한 사람이거나 부처 중 하나일 것이다.

다섯째, 마흔을 넘기면 직장 구하기가 어려워진다. 대한민국에서 나이에 대한 편견은 상상보다 심해서 검증의 기회도 없이 나이에서 일단 걸린다.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여전히 뜨거운데도 그건 내 사정이다. 눈높이를 대폭 낮춘대도 갈 자리가 많지 않다. 내 경륜을 사라고,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목청을 높여도 돌아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뿐이다. 운 좋게 취업을 했더라도 월급은 터무니없이 적고 업무는 감당할 수 없이 많은 경우가 부지기수다.

여섯째, 마음의 평화를 기약할 수 없다. 실패한 삶을 만회하기 위해 끊임없이 긴장해야 하니 당연한 결과다. 30대를 안정적으로 보낸 40대를 주목해 보라. 적어도 30대보다는 평화롭다. 한 직장에 오래도록 머물렀으니 인맥 구축과 조직 장악력도 탄탄하다.


꾸준함이 승리한다

이처럼 실패한 30대는 고단한 40대의 운명이 기다린다. 40대라고 말했지만 50대나 60대의 삶도 달라질 것은 없다. 기초가 무너졌는데 중간만 살짝 뛰어넘는다고 마지막이 잘될 턱이 있나. 두려운가. 암담한가. 그렇지만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언급한 여섯 가지는 실패한 선배들의 이야기지 여러분의 이야기는 아직 아니다. 여러분은 이제야 출발 선상에 서있다. 기껏해야 스타트에서 조금 나아갔을 뿐이다. 미래가 두려운 것은 살아갈 방법을 몰라서다. 안다면 쉽게 당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종종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를 들려준다. 성급한 토끼가 되기보다는 진득한 거북이가 되라고 말한다. 꾸준함이 승리한다는 메시지를 가르치고 싶었다. 한번은 큰아들이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아빠 앞으로 자랑스럽게 나섰다. “아빠! 나는 토북이가 될래요. 빠르기도 하고 꾸준하면 더 좋은 거 아닌가요.”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살아보니 토북이는 어렵더구나. 그렇게 살 필요가 있겠느냐. 너무 고단하지 않겠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