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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나

처음으로 한 회사에 3년째 출근합니다.

꼭 써야지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쓰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잠시 여유가 있어 지금 이 느낌을 잊어버리기 전에 꼭 글로 남겨야 겠습니다. 올해로 사회생활 또는 직장 생활을 한지 벌써 만으로 12년째 됩니다. 무슨 이유이든지 간에 한 회사에서 1년 이상을 다니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최초로 지금 다니고 있는 *******에서 만 2년을 체우고 3년째 별 문제 없이 잘 다니고 있습니다. 아마 오랫동안 한 회사에서 일하셨던 분들은 사람이 이상한게 아닌가 생각하실 겁니다. 맞습니다. 한 동안은 다른 사람이나 회사탓을 했습니다. 제가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주변 환경탓을 7-8년은 한 듯 합니다. 그러나 그래봐야 계속해서 이직이나 실직상태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무리 둘러보고 곱씹어 봐도 내가 틀리지는 않은 것 같은데, 무엇이 문제인지 도통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팀장이라는 위치에 있다 보니 "첫직장" 논리를 자연스럽게 펴게 됩니다. 가끔 충원을 할 때가 있어 이력서들을 보면 어떤 이유인지 짧게 많은 회사들을 옮겨 다니시는 분들을 봅니다. 그 분들 모두 저처럼 문제를 일으키는 분들은 아닐텐데 하고 자세히 좀 봤더니, 첫 직장을 급한 마음에 급하게 선택했거나, 선택한 직장이 잘못될 경우, 그 다음 선택 또한 급하게 될 가능성이 크고, 오래다닌다는 관점에서 볼 때 결코 좋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인지 모두들 취업을 고시처럼 공부하고 준비해서 좋은 직장에 가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다시 제 이야기로 돌아와서, 2003년도로 기억되는데, 우연히 모 소설가 댁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전날 10년 숙성한 매실주를 드셨다고 하는데, 훤히 열린 방안에 가득히 매실의 향기가 가득히 베어 있었습니다. 그때 느낀 게 "이게 바로 숙성이란 것이구나" 였습니다. 그날로 저도 매실주를 담궈서 10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매실주를 담그면서 좀더 참고 인내하고 진한 향을 낼 때까지 기다려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되는 문제는 아니었나 봅니다. 그 뒤로도 1년을 넘기는 경우가 별로 없었으니까요. 그때 우연히 접하게 된 책이 "실행에 집중하라"였습니다. 사람마다 평가가 조금 엇갈리기는 하는데, 도대체 무엇이 실행인지에 대해서 저에게는 많은 것을 알려줬습니다. 그때 느낀 것은 내가 인생에서 나만이 가지는 어떤 벽에 부딪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매번 있었던 다툼이나 좋지 않았던 기억들, 그 상황들을 내가 옳았다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부딪치고 있는 벽이란 것에 대입해서 다시 정리해봤더니, 매번 같은 벽에 부딪치면서 부딪치는 그 체계를 떠나면 어딘가는 파랑새 같은 곳이 있어서 부딪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나 봅니다. 벽을 넘을 생각보다는 때로는 도망가기도 했었고, 때로는 망치로 두들겨 부수기도 했나 봅니다. 그래서 내 앞으로 다가오는 어떤 벽들도 피하지 않고 넘어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부딪쳤던 저만의 벽이란 것은 다름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옳고 그름의 문제로 일, 삶의 문제를 판단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름 컴퓨터나 IT에 일가견이 있는 상황에서 비전문가들과 부딪쳤을 때 절대로 제가 질 수 없는 논리로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썼다는 것을 뜻합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나 개발에서 옳고 그름을 증명하는데, 나름 학위를 따고 시스템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이길 수 있는 기획, 마켓터들은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러한 논쟁이 시작되면 논지의 핵심이 고객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 어떤 새로운 가치를 만들 것인가에서 누가 옳은가의 문제로 전환되어 버립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새로운 변화나 진화, 개선에 대해서 두렸웠나 봅니다. 또는 하기 싫었는지도 모릅니다. 학교에서 배운 소프트웨어공학이나 여러가지 개발방법론은 제가 옳다는 대목을 여럿 발견할 수 있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선무당 이론가였던 거죠. 지금 돌이켜 보면 전문가도 아닌데 전문가 행세를 하며 여러 사람들에게 즐거움보다는 괴로움과 부정적인 시각만 전달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 다니는 *******은 우여곡절끝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파랑새를 찾아 떠난 중국에서 망가져서, 비행기 삯이 없어서 겨우 빌려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여러 아는 분들께 제일 먼저 "다른 것은 필요없으니, 제발 먹고 살 일자리를 알아봐달라" 요청했습니다. 이력서도 여기 저기 보냈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다들 당혹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10년 이력에 15개의 회사를 전전한, 그래서 들어오면 사고를 치거나 금방 그만둘 것인데 누가 면접이라도 보자고 하겠습니까. 어찌 어찌하다 현재 *******의 김모이사님이 면접을 잡아주셔서 면접은 어찌하여 봤습니다. 기억나는 것은 부담스러운데, 좀 고민해보겠다 였던 거 같습니다. 어이하여 출근하라는 연락이 와서 곧바로 다음 월요일에 출근하겠다고 했습니다. 이거 저거 생각하다가 어렵게 잡은 기회를 놓치면 천추의 한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솔직히 이거 저거 생각없었습니다. 좋은 회사인지,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일단 빵구난 집안 재정 상태를 회복시켜야 되고, 뭔가 일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때 다짐한게 "무슨 일이 있어도 1년은 채운다" 였습니다. 그런데 벌써 2년을 채웠습니다. 그러고 보면 현재 하루하루가 재인생에서 회사생활에 대한 기네스북을 작성하고 있나 봅니다.

돌이켜보면 위험한 순간들, 사고친 일들도 많았습니다. 그런 일들에 대해서 여러가지 도움을 주신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 듯 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입사할 수 있게 도움을 주신 김모 이사님. 언제나처럼 도움이 되어 드리고 싶은데, 요즘 잘 안 됩니다.
지저분한 이력서, 경력서도 아닌데 어려운 결정을 해주신사장님. 한동안 밤마다 찾아가서 토론하고 했었는데, 힘드셨을 겁니다. ^^;
아.. 입사동기이자 팀원이었던 수환님. 밝고 성실한 모습이 좋습니다.
어려운 빌링팀 업무를 탁월하게 처리하는 용훈님. 덕분에 제가 다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외에도 많은 분들 덕에 제가 잘 지내고 있나 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매일 매일 더욱 겸손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 더 성실하게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제가 배운 어떤 것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할 날이 오면 여러가지 배우고 느낀 것을 알려드리도록 하죠.

끝으로 하루가 멀다고 사고만 치는 남편을 둔 죄로 매일 가슴 조렸을 정민아, 이제 그런 날은 없을 거야. 그리고 아빠가 많이 못 놀아줘서 미안하다..유빈아. 이번 주에는 꼭 수영장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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