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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마흔 즈음에

2011년, 어쩔 수 없이 우리 나이로 마흔을 맞이해버렸다. 어쩌다 한번씩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을 들고 학교에 가야하는 느낌이 남아있는데, 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아빠가 되버린 불혹의 나이가 되었다.

20년 전만해도 인생 60에서 마흔은 남은 20년을 정리하는 것이지만, 세상이 더 좋아져 인생 80이라 이제 반환점을 돌았다고들 한다. 나에게 남은 40년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지금 "마흔 즈음에" 정말 중요하다.

백수라는 특권을 누리며 "생각하지 않고 지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정리해봤더니, 후회할 수는 없지만 반성할 것들을 찾아냈다. 삶이란 순간 순간 내리는 선택과 실행에 따른 결과물이다. 그 짧은 찰나에 합리나 이성이 끼어들기 힘들다. 이미 학습되고 습관화되어 최적화된 특정 양식, 패턴으로 반응하고 선택할 뿐이다. 그래서 후회할 수 없다. 부러워도 지지만, 후회해도 진다.

나는 참 최선을 다하지 않고 쉽게 살아왔다.
오해는 하지 마시라. 내가 어떤 일들을 할 때 전력을 다하지 않거나 책임감이 없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전력을 다함과 최선을 다함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너무 게으르다고 해야하나, 대략 적당한 타협지점에 이르면 멈추어도 사회적으로 우수한 쪽에 속하는 행운이 있었다고 해야하나, 그런 것들 때문에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인정받거나 좋은 결과가 있었다. 공부로 예를 들면 놀아도 항상 90점을 유지한다. 더 이상 잘할 필요도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비결은 패턴을 잘 파악하고 문제를 내는 사람을 이해하면 된다. 그래서 원리를 끝까지 파고들기보다는 문제 풀기에 몰두했다. 내가 1년 사이에 공부가 하고 싶다고 자주 이야기하는 이유다. 원리와 근원을 더 파고 들고 싶다. 게으름은 타고난 천성 같은데 이 때문에 고민이 많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거나 상처를 주는 일들이 많았다.
"착한 사람은 왜 주위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가 : 위선으로부터 편안해지는 법" 책이 있다. 참 재밌는 책이라 생각해서 낚였다.
난 착하지 않다. 그렇다고 사악하지도 않다. 단지 지금까지 "교과서"를 준수했다.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려 했을 뿐이다. 이런 자세가 "사이코패스" 성향이 보이는 특징이라고 한다. 사이코패스는 감정이 없고, 너무 합리적이라고 한다. 언제나 "감정"이나 "감성"을 뒤로 하고 "문제"에 집중하다 보니, 문제는 해결했을지언정, 사람들에게 "불편"과 "상처"만 남겼나 보다. 
내가 왜 "교과서"적이 되었을까? 
어린 시절이 불행했을까? 그렇게 행복한 것 같지 않다. 딱히 불행하다고 하기 어렵다.
아무래도 어려서 익힌 한문과 수없이 읽어 제낀 삼국지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엄격하고 술 좋아하는 아빠 때문이었을까? 아니라고 하기 힘들다.
어쨌든 분석은 해봐야 삶을 변화시킬 수 없다. 누군가 나 때문에 불편했거나 상처를 받으신 분들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어 사과드리며 용서를 구한다.
앞으로는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야 겠다. 거대한 이슈, 선행, 가치들 때문에 "착하게" 문제 해결에 뛰어들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까?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먹고 살까?
"어떻게"는 정리되어 간다. "무엇"은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가서 농사 지으면서 조용히 욕심 부리지 않고 살면 괜찮을 듯 하다.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정말 심심하다. 잊혀져 가고 지워져 가는 느낌이다.
왜일까?
아마도 "혁명"이라는 최고의 착함을 내려놓으면서 해야만 하는 멍에의 사슬을 벗어나서 일까?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한편으로 나를 위해 살아가야 겠다는 삶의 목표가 없었다. 살아온 삶에서 내가 없었다. 슬프다. 왜 그렇게 험난하고 울퉁불퉁 살아왔는지 찾을 길이 없다. 내가 없고 꿈도 없었으니.
무엇을 할까? 
무엇을 하고 싶니?

마흔 즈음에 내가 나에게 물어본다.
나는 무엇을 하면 남은 반평생을 살아갈거니?
나의 꿈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