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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감자

IMF와 만병통치주의

1997~ 1998년 동아시아의 재정 위기 동안 세계은행장 조셉 스티글리츠는 IMF와 미재무부의 정책에 놓인 인지함정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여기서 그는 인지함정이란 말을 직접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성급한 원인혼란을 야기했던 만병통치주의의 전형적인 사례로 이를 지목하고 있다. 1980년대 라틴아메리카 위기와 1990년 후반 동아시아 위기는 원인과 맥락이 각기 다르다고 그는 지적했다. 그런데도 IMF는 두 가지 위기가 마치 동일한 것처럼 대처했다.

라틴아메리카의 위기는 주로 극도로 높은 공공부문 적자와 방만한 금융정책에서 기안한 것이었다. 공공부문 적자는 정부가 벌어들인 것보다 지출을 많이 하고 그 차액을 외부에서 빌려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라틴 아메리카 위기가 어떻게 동아시아의 상황과 다른지 살펴보자. 라틴아메리카는 화폐 공급을 확대함으로써 엄청난 인플레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IMF의 해결책은 긴축예산 편성과 느슨했던 금융정책을 바짝 죄어 긴축재정을 실시하는 것이었다. IMF의 원조를 더 받고 싶다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이런 정책을 채택해야 했다.

1997년 IMF는 태국에도 동일한 정책을 집행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 문게가 있었다. 첫째, 동아시아 국가들은 대규모 예산 흑자를 누리고 있었고, 긴축금융정책을 펴고 있었으며, 인플레 비율이 떨어지고 있었다. 라틴아메리카의 상황과는 전혀 달랐던 것이다. 둘째, IMF 전문가들의 믿음과 달리 라틴아메리카 경기회복의 원인이 IMF의 긴축금융 프로그램 덕이 아닐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 멕시코의 회복은 긴축재정방침 때문이 아니라 나프타 협약의 초기 긍정적인 효과로써 미국의 석유 수입이 급등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다면 IMF를 비롯한 국제기구에서 활동하는 경제학자들은 실제로 개발도상국들이 모두 비슷한 상황이라고 보았을까? 스티그리츠는 IMF의 경제학자들이 특정한 국가에 권고했던 정책들이 상당 부분 다른 국가에 대한 정책 보고서에서 그대로 베껴서 붙인 것이라고 폭로했다. "그들은 워드프로세서의 '찾아서 바꾸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더라면 그 전의 국가명을 여기저기 남겨둔 채로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생각의 함점 154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