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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감자

[20050331] 히딩크는 없다

히딩크는 없다

2002년 월드컵 4강의 기적, 그 기적의 한복판에는 히딩크와 붉은악마가 있었다.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꿈을 이루었고, 한국 축구가 지속적으로 축구 선진국이 되었음을 확신했었다. 한국 축구는 곧 이은 K 리그의 흥행실패 등의 악재는 4강 기적이 한여름밤의 꿈으로 끝나는가 하는 의문을 남겼다.

2005년 독일월드컵을 향한 태극호의 출격에 불운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다. 본프레호의 삐그덕거리는 모습과 좋지 않은 성적들, 과연 독일월드컵 본선에 나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고, 본프레 뿐만 아니라 2004년의 코엘류의 경질까지 기억을 되돌리면, 이런 국가대표팀의 문제점이 단순한 감독의 역량이 아닌 어쩔 수 없는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어떤 조직의 역량을 파악할 때, 구성원의 개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리더의 역량-장악력, 비전 제시, 커뮤니케이션 등을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2002년의 히딩크와 비교해서 2004년의 코엘류, 2005년의 본프레의 리더로써의 역량이 형편없는 것일까? 히딩크의 역량이 월등해서 기적을 이루었다고 한다면, 히딩크가 우수하다는 당연한 결론 이외에 2가지의 시사점을 준다. 첫째는, 한국축구 자체가 별볼일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하루 빨리 히딩크 또는 그와 필적하는 리더를 감독으로 앉혀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현 시점에서 히딩크가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온다고 한들, 그 결과는 코엘류나 본프레와 다르지 않을것이라 예상한다. 물론 히딩크는 한국으로 와서 얻는 긍정적인 기대 요소가 너무 없기 때문에, 오지 않을 것이라 예상도 가능하며, 실제로 오지 않으려 하고 있다. 나는 히딩크가 뛰어난 감독이었음을 인정은 하지만, 히딩크가 감독이었던 시절과 지금의 상황은 심각하게 다르다고 평가한다. 그렇다면 히딩크가 있었던 시절과 지금의 상황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히딩크에 대한 여러가지 다큐나 책들은 대중적이기 때문에 그의 장점을 따로 논하는 것은 생략한다.


2002년에는 월드컵 개최국으로써 예선을 생략하고 본선으로 자동진출했다.
한일 공동 월드컵 유치를 통해서 일찌감치 예선전에 대한 부담감을 지우고, 장기간 본선 자체에 촛점을 맞추었다.  한국 스포츠계의 현실인 엘리트 체육을 통한 끈끈한 조직력을 갖출만한 기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한국의 스포츠는 초등학교부터 합숙과 훈련을 통한 조직력을 소수 참여자들을 통해서 유지되고 있다. 2년 넘게 하나의 팀으로서 팀원으로써 합숙과 전지훈련을 함께 한다는 것이 매우 큰 유대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16강 진출의 화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고,  프로팀의 선수 지원이 원활했었다.
어쩌다 보니 월드컵 본선 진출해서 1승도 거두지 못했던 팀으로서, 1승과 16강 진출이라는 거대한 염원을 "난 몰라" 하고 반대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조성되었다. 프로팀의 선수 지원이라는 문제에서 국가대표팀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울수 있었고, 전 사회적인 기대와 지원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빅리그에 진출한 선수들이 드물었다.
쉬운 이야기로 머리만 큰 선수들이 없었고, 사적인 리더십-홍명보와 같은-이 존재했다. 2002년 월드컵 대표팀의 면면을 보면 머리만 훌쩍 큰 선수들이 거의 없었다. 히딩크가 경쟁시스템을 통해서 신인에 가까운 유망주를 선발했었고, 축구천재라던 고종수, 이동국등이 합류하지 못할 정도로 무명에 가까운 신인급들이 많이 합류해었고, 이들을 사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었던 홍명보, 황선홍 같은 대선배들이 있었기에 보이지 않는 리더십이 통했다고 본다.


현재의 상황은 어떤가?
국민들은 이미 히딩크를 통해 월드컵 4강이라는 기대치가 형성되어, 본선 진출은 당연한 것이라는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져 있으나, 죽음의 랠리라 불리는 지역예선전을 거쳐야만 하고, 중추를 장악할 선수들은 저 먼 유럽에 나가 있어, 팀 훈련도 가뭄에 콩나듯이 하는데, 어떻게 조직력을 확보할 것인가? 또한 청소년 축구팀에서 박주영에 대한 청소년축구대표팀에 차출을 반대하던 프로팀들이 같은 이류로 국가대표 선수들의 지원을 최소화하려고 할 것인데, 이에 대한 대책도 없는 상황이다.


2006년 독일에서 대한민국을 외치기 위해서 적금을 부으면서 4년을 기다린 사람들에게 그 희망을 살려주는 길은 무엇일까? 국가주의적인 스포츠경쟁에서 상위에 랭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프로팀은 무조건적으로 선수들을 지원하여 조직력을 확보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현재 감독을 바꾸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 아니라면 현재의 본프레 체제로 밀고 가야 한다. 문제는 감독이 가진 스타일과 역량을 펼칠 만한 시간과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축구를 통해서 국가의 우열을 가리는 국가주의적인 경쟁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지만, 애국심으로 포장되어 있는 작금의 현실이 아쉽다. 과연 대한민국을 외치면 애국하는 것일까? 그리고 축구에서 승리하면 대한민국이 잘 되고, 국위가 선양될까? 누구 말 따나, 살림좀 나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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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덩크"를 보면 두 가지 특이한 점을 목격하게 된다. 하나는 일정 점수 이상을 얻지 못하면 외부 대회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점이고, 전국적인 대회가 하나뿐이고 그 대회에 참가하는 팀이 몇천 정도 된다는 것이다. 일본과 미국 등을 보면, 아마추어 스포츠의 기반이 매우 광범위하고, 그들중에서 뛰어난 사람들중 일부가 직업으로써 스포츠를 선택하여 프로가 된다는 점이다. 그에 반해서 우리나라는 어려서부터 합숙을 통한 훈련만을 하는 무늬만 아무추어인 프로들로 스포츠를 지탱하고 있다.

항상 외국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압박과 그길 말고는 삶의 형식을 변화시키기 힘든, 오직 그 한길만을 인생의 목표로 하기 때문에, 월드컵 진출과 좋은 성적을 위해서라면 현실적인 합숙 체계를 가져가야 한다.

축구뿐 아이라 스포츠 체제의 전반적인 구조를 개혁하여 광범위한 아마추어/클럽 시스템을 갖추면 좋겠지만, 적어도 10년을 내다보는 안목과 계획이 있어야 할 것이며, 사교육공화국에서 이런 철학이 먹혀야 한다는 과제가 남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월드컵 4강을 달성했다고 해서 군 면제를 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정책이었다. 선수들은 축구를 하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말하면서, 그들은 국가를 대표로 해서 축구를 할 수 있는 행운과 명예까지 거머쥐고, 국민으로서 의무를 하지 않겠다라고 당당히 이야기하는 이중적인 자세를 취했다는 점이며, 이런 성적지상주의와 엘리트주의, 국가주의 가 한국축구뿐 아니라 스포츠를 정체시키고 있는 것이다.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고 통곡하는 우리 선수들과 동메달을 따도 싱글벙글하거나 참가자체에 즐거워하는 외국 선수들과는 너무나 비교가 되지 않는가?

월드컵 본선 경기를 보면 한가지 더 흥미로운 것은 우승축에 드는 팀들이 초기에 손발도 잘 안 맞고 이상하게 잘 안풀리는 경기를 한다는 점이다. 경기를 더해가면서 그들이 조직력을 갖추어가면서 좋은 경기를 하는 것을 보면 훌륭한 팀과 선수란 무엇인가 하고 느끼게 된다. 이런 점은 2004년 도에 있었던 한국 e-sporst의 스타크래프트 선수들이 중국에 가서 대승을 거두었을때 확연히 차이점을 알게된다. 스타크래프트 인구만 1000만이 넘고 일년에 10여개 이상의 프로경기와 그 프로에 들기위해서 수많은 아마추어 경기들에 참여하는 준프로급 선수들, 그런 준프로급 선수들을 길러내는 길드 시스템, 그리고 그런 경기가 열리면 TV와 인터넷으로 열광하는 팬들이 있기 때문에 절대 강자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