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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나

버스기사의 이상한 배려 - 한국경제신문


이문재 < 시인·경희사이버대 초빙교수 >

낯선 전화번호였다.귀찮은 광고 전화는 아닌 것 같았는데,이름이 뜨지 않는 걸 보면,내가 모르는 사람이 분명했다.잠깐 망설였다.나는 혼자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손님이 거의 없는 중국음식점.휴대전화를 받았다.반가운 전화였다.지난 해 봄 중국으로 훌쩍 떠난 이후 연락이 끊겼던 졸업생이었다.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평소 말수가 적은 학생이었는데,낯선 중국 땅에서 겪은 문화충격을 하나둘 털어놓았다.통화가 제법 길었다.

전화를 끊고 났더니 남은 음식이 다 식어 있었다.그냥 일어서려는데,여종업원이 작은 그릇에 국물을 새로 내오는 것이었다.단골집이었다면,내가 달라고 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날,내가 저녁 먹는 시간보다 더 오래 전화 통화를 했던 중국음식점은 자주 가는 곳이 아니었다.종업원이 나를 알아볼 리도 만무했다.여종업원은 아무 말 없이 따끈한 국물을 탁자에 놓고는 카운터로 돌아갔다.나는 남은 음식을 깨끗이 비웠다.

집에서 학교까지 오갈 때 버스를 자주 이용한다.고양시에서 동대문구 회기동까지 가려면 버스를 세 번 갈아타야 한다.그런데 버스에 오르내릴 때 인사를 받는다.

운전기사들이 '어서 오세요' '좋은 하루 되십시오'라며 고개를 꾸벅인다. 처음에는 낯설었고,나중에는 조금 부담스러웠고,요즘에는 이상해 보였다.

버스 운전기사의 본분은 안전 운행이다. 버스 기사는 안전 운행을 위해 신경 써야 할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류장마다 안내방송을 하고,앞뒷문을 여닫아야 하고,노인이나 어린이가 타고 내릴 때는 긴장해야 한다. 버스 안팎의 상황에 늘 신경을 써야 한다.

승객들에게 인사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며칠 전 금화터털 입구 곡선 구간에서 "손잡이를 꼭 잡으십시오"라고 안내 방송을 하는 기사가 있었다. 그 기사는 설령 인사를 하지 않더라도 자기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친절한 버스 기사였다.

중국음식점 종업원이 따뜻한 국물을 내오는 것은 친절이 아니라 배려다. 하지만 버스 운전기사의 인사는 배려가 아니다. 기계적인 업무로 보일 때가 많다. 배려는 설령 친절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인다. 친절은 아무리 깍듯하다 하더라도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다면 무례가 될 수 있다.

사실 친절과 배려를 비교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 친절과 배려는 사과와 배처럼 서로 다른 것일 뿐이다. 둘 다 공존해야 한다.그런데 어느 새 친절은 마케팅 전략으로 전락하고,배려는 간섭이나 시혜로 변질됐다. 친절을 배려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배려해야 할 나이나 지위에 있는 사람이 친절하면 이상해 보인다. 부모나 선생, 사장은 친절이 아니라 배려하는 자리다.

친절이 공적 영역에서 발생한다면, 배려는 상대적으로 사적 영역에서 이뤄진다. 친절이 수평적 관계에서 자연스럽다면, 배려는 수직적 관계에 더 어울린다.

그러니까 친절은 배려에게 배우고, 배려는 친절을 닮아야 한다. 사과와 배가 서로를 배척하지 않듯이 친절과 배려는 서로 공존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친절과 배려를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고 노인, 비정규직, 농어민, 이주 외국인 등 사회적 약자들만 친절과 배려의 대상은 아니다. 그에 못지않게 사회적 약자들 사이,사회적 강자들 사이에서도 친절과 배려가 오가야 한다.

우리 사회의 성장 동력은 신기술이나 대체 에너지, 대규모 공사가 아니다. 친절과 배려의 문화가 없다면, 성장 동력은 더 심각한 갈등의 원인이 될 뿐이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진정한 성장 동력은 친절과 배려이다. 내가 너, 우리가 그들의 입장에 서는 것이다.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08021585741
한국경제신문 2008-02-15일

핵심, 본분, 친절, 배려에 대한 생각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