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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나

[세상읽기] 열쇠 수난시대

너무 멋진 글이어서 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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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가 필요하지 않은 것은 잠그지 않아서가 아니라 잠그는 방법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제는 내 기억이 열쇠다." 
"우리집 현관 비밀번호는 비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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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연다`와 `닫는다`라는 의미가 마음과 마음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인가. 마음을 여는 문은 비밀번호도 없고 `터치`로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번 읽어볼수록 생각할 거리가 많습니다.

열쇠고리에서 가족, 마음, 소통, IT, 기술 등으로 전개하는 글솜씨가 탁월하네요. 생활 구석구석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올라오는 생각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긴장감. 누구나 한번쯤 겪을 만한 경험으로 생각과 긴장감을 표현하는 글이란.

언제나 이렇게 유유히 생각을 글로 옮길 수 있을까?
노력은 하고 있지만 멀었다는 것은 안다.
나도 마음의 문을 열수 있을까?
 

출처는 매일경제신문 2011.11.09 입니다.
http://news.mk.co.kr/newsReadPrint.php?year=2011&no=727565

외국에 다녀오는 사람들이 열쇠고리를 선물로 주던 일이 많았다. 그 나라의 문화적 역사적 특성을 고리에 붙인 것으로 선물로서는 나쁘지 않았다. 나 역시 주기도 했고 받기도 했다. 나처럼 열쇠와 별 상관이 없는 사람도 적어도 몇 개는 짤랑거렸다. 제일 먼저는 아파트 현관 열쇠요, 두 번째가 자동차 열쇠요, 세 번째가 학교 연구실 열쇠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열쇠고리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게 됐다.

오래된 자동차 열쇠 하나가 역사적 존재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운전을 자주 하지 않아서 그 열쇠마저도 마음에 남아 있지 않다. 새로 나온 자동차를 보면 이젠 열쇠 없이 `터치`로 시동이 걸리고 있지 않은가. 내 서랍에는 심심찮게 열쇠들이 주눅든 채 딩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현금보다 더 챙기는 열쇠들이 아니었는가. 이제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열쇠가 필요하지 않은 것은 잠그지 않아서가 아니라 잠그는 방법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제는 내 기억이 열쇠다. 내 아파트 현관에는 숫자가 달려 있는데 그 비밀번호가 바로 열쇠이고 그 번호를 외워야 하는 내 기억이 열쇠로 변한 것이다. 그러니 딱딱한 쇠붙이의 열쇠가 밀려나고 보이지도 않는 마음속 혹은 정신속 기억능력이 바로 열쇠가 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현관 앞에서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다. 난감하고 내가 이렇게 됐다는 것이 억울하고 해서 쩔쩔매다가 딸에게 전화를 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 내 손을 대면 내 손의 기억이 그 비밀번호를 찾는 경우가 있다. 내 정신보다 내 근육의 기억이 더 총명할 때가 있는 것이다. 세상은 똑똑하지 않으면 순조롭게 살기가 힘들어졌다. 노인인구가 날로 늘어나는 이 시대에 기억력을 요구하는 첨단의 문 열기는 어쩌면 그 조화가 잘 맞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가장 필요한 정신운동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집 현관 비밀번호는 비밀이 아니다. 딸 사위 손주까지 다 알고 있지만 우리는 모두 비밀번호라고 부른다. 내 마음의 비밀번호까지 다 이제 자식들에게 주어야 할 때가 되었을까. 이제는 `연다`와 `닫는다`라는 의미가 마음과 마음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인가. 마음을 여는 문은 비밀번호도 없고 `터치`로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이 열릴 때 작은 쾌감을 느낀다. 그럴 때 사람의 마음도 비밀번호가 있어서 이렇게 확 열리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본심을 숨기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제아무리 친한 사이에도 본심을 말하기를 꺼려한다. 아니 꺼려하기보다 하지 못하는 것이 더 분명한 말이다. 너무 미루고 미루다가 때를 놓치고 아쉬워하면서 결국 마음을 닫아버리는 것이 한국인의 버릇이라 말한다.

최첨단의 문 열기가 갈수록 더 첨예해지고 사람의 냄새를 기억한 기계가 문을 열어 주는 시대가 코앞인데 왜 사람의 마음을 여는 일에는 아직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숫자 몇 개만 누르면 확 열리는 문처럼, 아니 비밀번호 없이 가까운 가족에게나 친구에게 새 시대의 말하는 법이 이젠 필요할 것 같다.

마음에는 있다고 하면서 말은 하지 않는 이상하고 비합리적인 태도에 서로가 익숙해 있으면서 `답답한 심적병`을 호소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사실 서로 답답하다고 하면서 처리는 미루어지고 마음은 계속 병을 앓는 것이다. "아무도 몰라"라고 스스로를 가두는 일에서 좀 더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한 듯하다.

이런 마음의 본심을 상처 없이 여는 열쇠는 없는 것일까. 마음을 여는 열쇠는 마음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것도 습관일까. 그렇다면 습관이라는 족쇄에서 풀려날 때가 됐다.

[신달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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