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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IT 시스템과 개발

컴퓨터를 마주한지가 벌써 30년이 다 되어가는군요.
컴퓨터로 밥 먹고 산지는 이제 고작 16년 되어가고요.

그 옛날 옛날 예적에는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컴퓨터 세상이 지금같은 모습이 될지 정말 몰랐습니다.

최근 몇 개월 사이에 개발은 하지 않고 소발, 돼지발 하면서 지내면서, 개발에 대해서 생각해 볼 시간을 많이 갖게 됩니다. 오직 개발만이 나의 밥줄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지나고 나니, 두 세 걸음 떨어져 개발을 멀리 보기를 해 봅니다.

우리가 만들어 내는 IT 시스템은 만든이의 삶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습니다.
고고학자처럼 코드와 DB, 시스템들간의 인터페이스, 버그가 나오는 양상등을 조심스레 살펴보고 또 살펴볼 시간을 가지면 시스템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할 뿐 아니라, 시스템이 만들어진 시점에서 만들이들의 고뇌와 한계, 열정, 분투하는 피끓는 심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IT에 일해왔지만, 떡하니 보기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 낸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 내가 만든 작품, 시스템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봅니다. 아마도 둘 중에 하나입니다.
어처구니 없이 간결하지만 엉망 그 자체인 고객의 요구에만 충실한 시스템.
너무 완벽하여 매일 진화하며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네버엔딩 시스템.

IT 시스템을 개발하는 일은 아직도 딱 부러지게 정의할 수 없는 영역으로 보입니다. 메타포로 사용하는 건축은 적어도 5,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만한 과학적, 공학적 이론이 존재하는데 반해, IT는 이제 겨우 60년의 역사만이 있을 뿐입니다.

IT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은 누구나 알다시피 창조적이고 다분히 개인적인 두뇌 작업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개발을 관리(!)하겠다는 야심에 찬 논리를 마주하게 됩니다. 결과론적으로 개인의 두뇌를 관리하겠다는 파쇼적인 발상인 것이죠.

IT 시스템은 개발자를 닮기도 하지만, 개발을 모르는 관리자이거나 개발을 껍질만 알면서 개발자를 사칭하는 관리자들을 더 많이 닮아 가는 것 같습니다. 개발을 모르니 자꾸 관리해야 하고, 관리할 지점을 알 수 없으니, 자꾸 새로운 기법들을 도입하고, 계량화하고 말도 안되는 일정으로 개발자를 괴롭히는 거겠죠.

천천히 하나씩 뜯어보면, IT 시스템은 관리자와 개발자들간에 절충한 어떤 영역에서 언제나 같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에러는 없지만 원하는 결과를 만들지 못하는 논리적인 정합성을 보이지 못하거나, 버그가 항상 같은 곳에서 일어나거나, 버그를 하나 고치면 새로운 버그 3개가 나오거나, 사용자 100명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110명을 넘어서면 멈추는 시스템.

시스템을 설계하고 만드는 일.
참으로 두렵고 어려운 일입니다.
학교에서 주구장창 그렇게 배웠고요.
이제는 쉽고 재밌는 일로 만들고 싶습니다.

내가 만든 코드때문에
즐거운 사람이 생겨나고
돈을 버는 사람도 나타나고
매일 매일 즐거운 사람도 나타나고
언제나 행복했으면 합니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어가니 코딩과 개발 성능이 몇 년전의 50%도 안되어 가네요.
생각은 이미 저만치 가있지만, 손은 발처럼 움직입니다.
악명으로 자자한 마이너스의 손.
손으로 건드리면 모든 것을 폐허로 바꿔버리는 ...

오늘도 수많은 개발자들이 날밤을 까면서 개발, 개발 하겠죠.
개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몰래 뒷받침하는 많은 시스템들.
만리장성과 피라미드를 쌓았던 민중들처럼
시스템들을 정상처럼 돌리기 위해 노력한 SE와 SE, NE들이 존재하기에 가능하겠죠.

이 무슨 소리인지.
자다가 잠이 안 와 술 한잔 걸치고 이리 저리 생각해 봅니다.

Quo Vadis Dom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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