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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나

괴상한 완벽주의

'최고를 추구하자'는 말을 잘못 이해한 나머지 엉뚱한 곳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사람도 있었다. 1950-60년대에 캐딜락 광고를 맡았던 광고회사 임원이 경험한 내용이다. 당시에는 제임스 로쉬가 캐딜락 부서장을 맡고 있었다. 매년 제작하는 캐딜락 크리스마스카드를 디자인할 시기가 되자 로쉬는 광고회사에 아주 미국적이면서 좋은 그림을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어떤 꼬마가 크리스마스트리에 묶여 있는 썰매를 잡아당기고 있는 그림이 로쉬의 마음에 들었다. 그 소년이 가려고 하는 곳은 바람이 부는 작은 언덕 위에 있는 조그만 통나무집이었다.


로쉬는 그 그림이 마음에 들었지만 캐딜락이 그림 속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소년과 썰매 그림은 빼고, 크리스마스트리를 지붕에 매달고 있는 캐딜락 그림을 집어넣으라고 주문했다. 그래서 화가가 그렇게 제작해 왔다. 카드를 인쇄해야 할 마감일이 다가오고 있어서 수정된 카드를 로쉬에게 보여줬더니 그는 또 다른 걸 지적했다. 조그만 통나무집과 캐딜락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캐딜락을 타는 성공한 사람이 왜 그런 허름한 곳에 살겠느냐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캐딜락 소유주들에게 걸맞는 집으로 다시 그리라고 했다. 그래서 화가가 으리으리한 집을 그려 왔다. 집이 커지다 보니 언덕 그림도 크게 바꿔야 했다. 이 정도 되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로쉬는 그 정도 근사한 집이라면 차고가 한 개가 아니라 두 개는 되어야 한다고 또다시 꼬투리를 잡았다. 그래서 화가가 다시 집 옆에 차고를 하나 더 그려 넣었다. 이쯤 되니까 하도 덧칠을 많이 해서 그림이 두꺼워졌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봐줄 만했다. 마지막으로 카드 디자인을 검토하는 자리에서 다들 침묵을 지켰지만 로쉬는 평소처럼 단조로운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엔지니어링 쪽에서 타이어를 확인했습니까?" 엔지니어링 임원이 뭐가 문제냐고 질문했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눈길에 찍힌 타이어 자국을 보세요. 타이어 자국이 선명한데 이게 스노타이어 자국이 맞습니까?" 로쉬는 어떻게 이처럼 중요한 일을 확인도 하지 않을 수 있느냐면서 벌컥 화를 냈고, 그래서 GM 엔지니어링부서에서 확인을 거친 스노타이어 자국 모습을 화가에게 택배로 보내 줘야 했다. 그 화가에게는 캐딜락 크리스마스카드에 들어갈 스노타이어 자국을 어떻게 그릴지 결정할 자유도 없었던 것이다. 


빈 카운터스 9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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