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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봄이 오는 길


봄이 오는 길
정봉렬

봄은 길을 따라 오지 않는다 
바다를 건너 올 때도 
뱃길 따르지 않고 
산맥을 넘을 때도 
바람에 몸을 싣지 않는다 

봄이 오는 길은 따로 없다 
언 땅 밑으로 흐르는 물에나 
깊은 잠 속의 짧은 꿈에서도 
아지랑이로 살아오고 
만나고 헤어지는 정류장을 아무도 모른다.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기는 오나 보다. 9호선 등촌역 플랫폼에 있던 "봄이 오는 길" 이란 시가 가슴을 훓고 지나간다. 뜨거웠던 여름과 유난히 추웠던 겨울에 그냥 스쳐 지나갔는데, 이제 볼 때 마다 봄이 다 온 것처럼 기쁘다.

봄은 겨울보다 먼저 오지 않는다는 광고는 틀렸다. 봄이 온 다음에야 겨울이 온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어느 누구도 봄이 먼저 였는지 겨울이 먼저 였는지 규명하기 어렵다. 그냥 그랬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따르면 된다. 관습적으로 봄여름가을겨울 로 4계절을 되뇌인다. 아마도 그게 편하고 생활에 익숙했으리라. 어쨌든 난 봄이 온 다음에 겨울이 다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름은 장마와 푸르름으로, 가을은 시퍼런 하늘과 화려한 단풍으로, 겨울은 매서움과 하얀 눈으로 으로 오는 길을 알려준다. 봄은 어떻게 올까? 꽃이 피면 봄이다. 움츠렸던 꽃망울이 톡 하고 터질 때 봄은 절정이다. 그 전까지 봄은 겨울과 공존하며 어떻게 오는지 안 알려준다. 

내 삶에도 봄이 빨리 왔으면 한다. 봄이 오는 길을 알면 쫓아가 볼텐데, 강태공처럼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봄이 오길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