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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조조, 경기와 위황의 반란

삼국지를 읽다 보면 조조가 경기와 위황의 반란을 처리하면서 상식과 반대로 행동하는 이상한 모습을 보게된다.


조조는 군사훈련장에 붉은 기와 흰 기를 좌우에 세우게 하고 말했다.

“경기와 위황 등이 반란을 일으키고 불을 질러 허도를 태웠다. 너희들 속에도 역시 나가서 불을 끈 사람도 있을 것이고 문을 닫아걸고 집안에서 꼼짝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불을 끈 사람은 붉은 깃발 밑으로 가서 서고 불을 끄지 않은 사람은 흰 깃발 밑으로 가서 서도록 하라.”

많은 관리들은 불을 껐다고 해야 죄를 묻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붉은 깃발 밑으로 달려갔다. 3분의 1만이 흰 깃발 밑에 모였다.

조조는 붉은 깃발 밑에 서 있는 자들을 모두 잡으라고 했다.

많은 관리가 말했다.

“아무 죄도 없사옵니다.”

조조가 말했다.

“너희들은 당시 불을 끄려고 나간 것이 아니라 실은 역적들을 돕고 싶어 나갔을 것이다!”
 
모두 장하(漳河) 가로 끌어내어 목을 쳐 죽이라고 명했다. 죽은 사람이 3백여 명이나 되었다. 흰 깃발 밑에 서 있던 사람들에게는 빠짐없이 상을 주고 허도로 돌려보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행동한다.

위험을 감지하는게 아니라 위험이 감지된다.

위험이 감지되면 위험을 회피하려 한다.


불을 끄지 않고 집에 숨어 있었다고 고백하고 흰 깃발 밑에 서는 일은,

"겁쟁이"라는 자기 고백과 창피함을 감당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위험을 느끼게 된다.


조조는 이 위험을 느끼고도 솔직히 말하는 사람을 골라내고 싶었을까?

반대로 이 위험에서 살아남기 위해 솔직하지 못한 사람들을 골라냈을까?


현대라는 시대의 사회과학이나 행동과학은

모두가 붉은 깃발 밑으로 가고,

붉은 깃발로 모인 사람들에게 상을 내려한다는 가설,

모든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전제로 성립되었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은 본능적으로 행동한다.

본능은 위험이 감지되면 위험을 회피한다.

사회적 관계속에서 위험에 대해서 사실적으로 고백하고, 겁쟁이라고 손들기 쉽지 않다.

사회적 관계는 자기 과시와 포장이 없으면 나락으로 존재를 이끈다.


어느 분이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는데,

몇 개월째 어느 누구도 전화한통 없다는 푸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떠올랐던 고사인데,

밑에 있던 분들은 언제나 붉은 깃발 밑에 서 있어야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회사에서 흰 깃발 밑에 선다는 것은

무능함과 도전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에서,

모두 붉은 깃발 밑에 서 있었다면,

진심이었을까?


우리는 붉은 깃발 밑에 서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여유와 공백이 있어 자연스럽게 흰 깃발도 선택하는 자유와 관용이 필요하다.

더욱 필요한 것은, 물론 선택할 수 있는 용기다.


조조에게 가서 한 번 물어봐야 겠다.

왜 붉은 깃발 사람들을 처형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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