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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합리, 그리고 핑계 없는 삶

어제밤 아픈 배를 쥐어잡고 결국에는 라면을 끓여 먹었다. 맛있게 컵라면을 먹는 장면을 TV에서 보고는 너무 땡겼기 때문이다. 집사람은 배가 아픈 사람이 무슨 라면이냐고 구박을 한다.


어쩌면 배가 아프다는게 핑계였을까?

컵라면 먹는 장면이 너무나 맛있게 보였다는 핑계였을까?


살아오면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언제나 어쩔 수 없었다는 합리적인 이유를 만들어 냈다. 어쩔 수 없었다는 어쩌면 나는 잘못하지 않았다는 소극적인 반론인 셈이다. 세상의 모든 일을 설명해야 하는 피곤함과 둘째치고 함께 언제나 설명 가능한 질서정연한 세상을 가지고 살았던 셈이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다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 조지 버나드 쇼

세상은 어디쯤에선가 설명하지 못하고 할수도 없는 곳이 존재한다.

통과하고 나면 설명이 가능하다.

통과하지 못해도 설명 대신 합리적인 핑계는 가능하다.


나는 어쩌면

지나가기 싫어서,

지나가는 게 귀찮아서

가지 않아도 되는 변명 거리를 찾았던 거 싶다.


그 변명들은 책들이 던져준다.

책은 우리에게 세상은 이러하니 반드시 저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세상의 지식 중 손에 쥘 수 있는 모래알만큼만 가져도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모든 일에 합리적인 핑계를 댈 수 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합리적인 것과 핑계를 싫어하게 되었다.


핑계 없이 살아가는 삶이란 정말 어렵다.

순간 순간 핑계거리가 떠오른다.


너무 멀어서 ...

돈이 안되서 ...

잘 몰라서 ...

그건 아니라서 ...

시간이 늦어서 ...

맘에 안들어서 ...

힘들어서 ...

준비가 덜되어서 ...

장비가 후져서 ...

사람이 없어서 ...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 속담이 무섭게 다가온다.

오래전부터 핑계가 삶을 속박한다는 것을 선인들은 알고 있어으리라.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고 쓰고 말 것인지,

나도 한번 고민해야 겠다.


핑계 없는 삶이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일 줄이야.

또 핑계다.


아님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