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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감자

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회사 호칭

회사 구성원 모두에게 이름 뒤에 [님] 자를 붙어야 하는 회사에 4년간 다녔다. 나이나 직급과 상관없이 [님]을 붙여야 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고, 신선해 보이기도 했다. [님]이라는 호칭은 컴퓨터 통신에서 채팅하던 까마득한 시절이 떠오르기도 한다. 모뎀을 이용하여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에서 채팅을 할 때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관습적으로 모두가 [님]이라는 호칭을 붙였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하는 줄 알았던 까막득한 시절에나 있을 법한 일을 사회에 나가 회사라는 조직에서 겪었다.


한국이라는 사회는 나이, 학번, 조직내 서열, 입사 순서 등에 따라 존칭과 하대를 결정하는 아주 단순하고 무서운 위계질서가 있다. [님]을 붙여야 하는 회사는 무슨 철학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국 사회가 이런 잘못된 관습때문에 발전이 없다고 믿고, 반말을 한다거나 존칭을 사용하지 않으면 회사에서 나갈 각오를 해야할 정도로 강하게 [님]이라는 호칭을 시행했다. 구성원들 중에서 호칭이나 존댓말 때문에 회사를 나간 사람은 없었다. 몇 번 경고를 받은 사람들은 있다는 소문은 들었다.


[님]이라는 호칭과 존댓말은 매우 괴상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사회적으로 상당히 존경받을 만한 분들께는 당연히 [님]과 존댓말을 사용한다. 반대로 상대방이 갸늠하기 어려운 낯설 때, 하대를 하기 힘들 때 님과 존댓말을 사용한다. 고객센터나 콜센터에서 "고객님" 하는 것은 후자에 가깝다.


독특한 우리말 어법은 특히나 친구라는 개념에서 다른 나라들과 다르다. 나이가 다르면 친구가 될 수 없다. 빠른 80이니 하면서 동시대적 개념을 이야기하면서 서로 친구 먹으면 말을 놓는다. 다르면 누군가는 말을 하대하고 누군가는 말을 높여야 한다.


회사내에서 호칭은 여러 곳에서 다양한 시도를 한다. 앞서 이야기한 한국 사회에서의 무서운 위계질서가 사람들의 창의력이나 열정을 깎거나 인격적인 공격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수평구조를 지향하는 회사들이 시도를 한다. 영어 이름으로 부르거나 님자를 붙이거나.


[님]이라는 호칭을 부르면서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많이 나타나는 것을 목격했다. 첫째로 [님]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발상은 눈가리고 아웅이다. 둘째, 회사가 자유롭고 수평적이라면 개인의 의사결정에 대해서 이렇고 저렇고 지시를 하지 않아야 한다. 셋째, 중간 관리자라 부르는 팀장들은 중간에서 죽어난다. 넷째, 조직이 커지고 상대방이 누군인지 갸늠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님]이라는 호칭은 "고객님 안녕하세요"의 냄새를 풀풀 풍긴다.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한다.)


마음 가운데는 상대방이 밉고 싫은데, 입에서는 강제적으로 [님]이라고 부르면서 존댓말을 사용하는 역겨운 상황에 놓인다.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직감적으로 "아, 저 사람이 나를 무시하는구나" 알아차린다. 이런 엿같은 상황에서 험한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막아는 주지만, 그 이상의 순기능을 보지 못했다.


님이라는 글자에서 점하나를 찍으면 남이 된다는 노래 가사가 있다. 상대방이 누군인지, 공감하는 부분이 적은 낯선 사람에게 [님]이라 부르는 일은 "남"이라 부르는 것과 똑같다. 특히나 일 자체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객관주의적 접근을 하면서 [님]이라는 호칭과 존댓말을 사용하는 일은 상대방, 특히 궁지에 몰린 당사자 또는 실무자들에게는 모욕으로 다가간다.


호칭때문에 퇴사를 당하는 사유가 된다면, 이건 군대와 똑같은 수준의 조직이라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법률 체계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법률의 틀을 벗어난 독단적이고 인권 침해의 요소가 있지 않을까 하는 추정도 해본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일은 [님]이라는 호칭과 존댓말에 있지 않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공감하고 충분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 할 수 있어야만 상대방이 존중받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내가 했다고 일방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그렇게 느껴야만 가능한 일이다.


욕설과 심한 반말이 아니라면 어떤 호칭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님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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