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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감자

오세훈, 꽃놀이패와 불타는 플랫폼

오세훈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투표율이 33.3%를 넘지 못하면, 서울특별시 시장직을 내놓겠다고 울며불며 무릎꿇고 기자회견을 했다. 주민투표에 관심도 없고, 블로그에 글을 써서 굳이 관심을 불러 일으켜서도 안 되겠기에 조용히 있으려 했으나, 이제 투표일도 2일 남았고 세간의 관심으로 떠올라 그냥 큰 호수에 작은 돌 하나 던지는 심정으로 글을 쓴다.

오세훈의 꽃놀이패란?
오세훈의 행보를 이해하는 길은 매우 쉽다. 무상급식 반대는 꽃놀이패이며, 현재의 주민투표는 불타는 플랫폼이라는 점이다. 성숙하지 못한 정치인은 꽃놀이패를 제대로 이해못하며, 활용도 못하고, 꽃놀이패를 들고 갈등을 하며, 손해를 안 볼 묘안을 생각하는라 정신이 없다. 

꽃놀이패 1: 먼저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는 오세훈이 시장으로서 직접 발의하지 않고, 시민단체의 청원을 통해 이뤄졌다. 발의한 시민단체가 뭐하는 단체인지 관심없다. 주민 청원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오세훈은 자신이 발의하지 않았고, 법적인 절차에 따라 발의했다는 소극적인 책임 자세를 확보할 수 있으며, 면피도 가능하다.

꽃놀이패 2: 주민투표가 열띤 경합끝에 오세훈이 이기게 되면, 오세훈은 보수 진영의 영웅이 된다. 좌파, 진보의 포퓰리즘과 퍼주기 선심 공세에 혼자 맞서 싸워서 이긴 영웅. 보수 중에 누가 전면적으로 좌파, 진보와 맞짱 떴는가? 맞짱 떠서 선방을 날리고 승리를 이끈 정치인이 있던가? 단숨에 박근혜를 제칠 대권주자로 떠오른다. 승리한다면 차기에 나서면 노골적이기에 차차기를 노리면 된다. 

꽃놀이패 3: 만약 주민투표가 열띤 경합속에 이뤄져 오세훈이 졌을 때, 오세훈이 잃을 게 하나도 없다. 오세훈이 돈을 부담하는 것도 아니고, 직접 발의한 것도 아니고, 뭐 하나 책임질게 없다. 사람들의 뇌리에 남는 영웅은 고군분투끝에 처절한 싸움 끝에 패배한 열사와 지사다. 오세훈은 변명 거리가 너무 많다. 한나라당이, 한나라당의 각 계파들이, 보수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주지 않아서 졌다고. 이제 자신을 중심으로 뭉쳐달라고.

꽃놀이패 4: 오세훈이 졌는데, 사퇴의 압박을 받게 된다면, 오세훈은 기꺼이 눈물을 머금고 물러나면 된다. 어차피 서울특별시 재정이나 살림살이는 개판 아닌가. 면피 뿐 아니라 광박도 면하는 좋은 패다. 더불어 살아있는 오다르크가 된다. 박근혜처럼 보수를 위해, 한나라당을 위해 전면적으로 싸우다 쓰러진 장군. 차기와 차차기 중 맘에 드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꽃놀이패 5: 투표율이 아쉽게 33.3%에 못 미칠 때, 앞서 발표한 내용처럼 사퇴하면 된다.  독박은 한나라당. 조금만 더 도와주셨다면 기자회견을 하면 된다. 이때는 차차기가 좋겠다.

꽃놀이패 6: 투표율이 어처구니 없게 나올 때, 오세훈은 한나라당과 좌파,진보를 싸잡아 비난할 패가 생긴다. 나라의 미래를 위한 주민투표에 신성한 권리인 투표권을 포기하다니, 게다가 투표를 포기하라고 하다니, 한나라당은 앞서 이야기한 내용에다 정리정략에 따라 보수의 가치를 잃었다고 이야기하고, 자신이 이 모든 것을 짊어지는 역사의 죄인이 되어 헤쳐나가겠다고 하면 면피다. 이때는 차기가 좋다. 한나라당 내에서 싸워볼만 하고 여론은 오세훈 동정론쪽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꽃놀이패 7: 좌파와 진보는 답답한 상황에 직면했다. 붙어서 직접 싸우자니, 판을 키워주는 꼴이고, 묵과하자니 투표율이 올라갈 것 같고, 그래서 "나쁜 투표"하지 말자고, 투표 권리를 포기하라고 이야기하는 역설에 직면하고 있다. 좌파와 진보가 적극적이지도 소극적이지도 못하기 때문에 오세훈은 마음대로 하면 되는 꽃놀이패.

꽃놀이패 8:민주당을 비롯한 진보에게는 해결 방법이 없다.국회에서 과반도 아니어서 전국적인 무상급식 법안을 만들수도 없고, 발의하는 순간, 오세훈을 띄워주기를 하는 꼴이다. 그러니 조용히 있을 수 밖에.

꽃놀이패 9: 한나라당 계파는 정리정략대로 움직인다. 박근혜쪽은 조용히 그냥 묻혀주기를 바란다. 뜨면 귀찮기 때문이다. MB계는 도토리 키재기하고 있어, 견제를 한다. 주민투표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다. 적극적으로 지원하자니, 오세훈을 너무 띄워주는 격이고. 중구난방 격이다. 통일된 입장을 표명할 수 없으니, 노마크 골대 앞에 선 공격수 오세훈.

오세훈은 왜 무상급식에 반대했을까?
오세훈은 이명박과 지난 지방 선거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배웠다. 인터넷을 비롯한 온라인 여론은 별반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나라당 간판을 달고 있는 한 보수라고 하는 사람들의 적극적인 지지가 무엇보다 필요하는 점과 가능하다면 보수에서 이슈를 선점하고 싸우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명박 이후로 보수와 우파는 지리멸멸하다. 누구 하나 "내 밑으로 모이세요" 하는 깃발을 들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깃발을 들고 앞으로 나아가 싸운다면 우파와 보수를 결집시키고 대권주자로 부상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권후보인 박근혜는 최근 1-2년 사이 거의 모든 이슈에 대해서 말문을 닫고 있다. 이에 반해 오세훈은 가장 첨예한 이슈에 대해서 정면승부를 했다. 이미 박근혜쪽으로는 세가 정리되어 가고 있을텐데 , 오세훈은 가진게 없기 때문에 빈자리도 많고 조직도 적어 결집하기 좋다.

아이들은 자라나면서 어느 순간 사물을 분류하기 시작한다. 가령 사과는 과일에, 말은 동물에, 꽃은 식물에 속한다는 것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깊어진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분류하는 능력을 키운다.
 

사람들은 이해를 하기에 앞서, 먼저 분류를 시도한다. - Walter Lippmann 

이 말의 의미는, 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사물을 분류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하나의 사물을 이해하기 전, 그것이 다른 것들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먼저 궁금해한다. 우리의 머릿속엔 다양한 카테고리 구조가 자리를 잡고 있다. … 하지만 우리의 머릿속에 만들어져 있는 이러한 카테고리에 정확하게 들어가지 않는 사물이나 현상이 나타날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된다. 

<디퍼런트 - 163쪽>



위 글에서 처럼, 우리는 어떤 사실을 접할 때 이해부터 하는 게 아니라 분류부터 한다. 분류를 하고 나서 받아들일 것인지, 거부 또는 배척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스스로 좌파 또는 진보라는 사람들은 아무리 오세훈이 좋아보이거나 좋은 말을 한다고 해도, 오세훈이 한나라당이고 보수이고, 민주당과 진보를 괴롭힌 정치인이기 때문에, 적으로 분류한다. 오세훈의 입장에서 적으로 분류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에게서 지지를 약간 더 받는 것보다는, 오세훈을 친구이자 동지로 분류하고 무슨 말이든 믿어주고 따라주고, 찍어줄 사람들을 몽땅 얻는 게 좋다.오세훈의 셈법이다. 좌파와 진보는 버리고, 우파와 보수를 챙긴다. 그렇게 해서 얻을 것은? 앞서 선배의 뒤를 따라 청와대로 가는 길이다.

오세훈과 불타는 플랫폼

CEO 스티븐 엘롭이 노키아 직원들에게 보내는 글
http://eggy.egloos.com/3570326 에 보시면 전문의 번역본을 볼 수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여기 시의적절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북해의 유전 플랫폼에서 일하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어느날 밤 큰 폭발소리를 듣고 일어나보니, 플랫폼 전체가 불바다가 되어있었습니다. 순식간에 그는 화염에 둘러싸였습니다. 연기와 열기 때문에 플랫폼 가장자리로 가기 위해 악전고투했습니다. 그가 가장자리에 도달하고 보니, 보이는 것이라곤 어둡고, 차갑고, 불길해보이는 대서양의 바닷물 뿐이었습니다.

화염이 그에게로 다가오자 그의 선택은 촉각을 다퉜습니다. 그는 플랫폼 위에 서서 타오르는 화염에 삼켜질 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30미터 아래의 차가운 물로 뛰어들 수도 있습니다. 사내는 "불타는 플랫폼" 위에 서있으며, 선택을 해야합니다.

그는 결국 뛰어내렸습니다. 예상했듯 말이죠. 보통 상황이라면 사내는 절대 얼음물로 뛰어드는 짓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보통 상황이 아닙니다. 그의 플랫폼이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사내는 추락과 얼음물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그가 구조된 뒤 그는 "불타는 플랫폼"이 그의 행동양식에 변화를 주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우리 또한 지금 "불타는 플랫폼"에 서있으며, 우리도 행동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오세훈은 입지적이지 않다. 엘리트, 기득권이라고 이야기들 한다. 엘리트 코스에서 달릴 때는 선택의 여지가 많다. 선택을 어떻게 잘하는가가 입신양명을 보장한다. 입지적인 사람들은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자신이 가야할 길을 만들어간다. 그들에게 선택은 사치일 뿐이다. 계산과 이해타산에 앞서 이 길이 아니라면 죽는다는 생각을 먼저 한다. 오세훈은 머리가 좋고 법도 많이 알고 하니 계산이 빠를 것이다. 저 정도의 꽃놀이패 계산을 다 했을 것이다. 전혀 손해 보지 않는 꽃놀이패. 94 파토가 나오지 않는한 무조건 이기는 꽃놀이패. 어떤 패를 쓰더라도 문제없는 꽃놀이패.

오세훈은 결정적인 실수를 한다. 불타는 플랫폼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뛰어내리지 않는다. 주민투표 이야기를 거론하면서, 주민투표를 발의하면서 엊그제 투표율로 시장직을 사퇴한다고 했을 때도, 뛰어내릴 수도 있거나, 뛰어내리겠다고 했지, 지금 뛰어내린다고 하지 않았다. 상상해보라. 지금 당신이 불타는 플랫폼에 서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들에게 앞으로 뛰어내릴 수도 있겠다고 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에게 뛰어내리라는 명령을 하고, 먼저 솔선수범하여 뛰어내릴 것인가? 

불타는 플랫폼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뛰어내리지 않는다면, 반대로 플랫폼이 불타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99.99% 이다. 감추는 것이 있을 때 그렇게 이야기한다. 오세훈은 결코 뛰어내리지 않는다. 모든 것을 걸지 않는 도박, 이길 수 밖에 없다 계산한 꽃놀이패. 오세훈이 정말 승리하고 싶었다면, 모든 것을 내던지고, 발의하는 순간, 사의를 하고 조용히 투표를 기다렸을 것이다. 무상급식이 정말로 싫다면, 자신이 벌어들인 모든 돈을 단계적 급식의 재원으로 사용해서 국가의 부담을 줄이고, 재원의 건전성을 확보하라고 호소했을 것이다. 무상급식은 그냥 소재일 뿐이고, 뼈속, DNA까지 보수가 아닌 까마귀이기 때문에, 불타는 플랫폼에서 양치기 소년 한명이 등장했을 뿐이다.

대북여론의 동학: 한국은 지금 까마귀들의 나라
http://skynet.tistory.com/1397
아주 멋지고 잘 쓴 글이다. 한국의 우파, 보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왜 까마귀떼들이 득실 거리는지, 분야가 다르기는 하지만 참고로 읽어볼 만하다.

째, 어쩌면 가장 주목해야할 유형인데 매파랑 묶여서 조명을 받지 못하는 그룹이 바로 호전적 이기주의자들이다 (WS). 이들은 매파와 같이 전쟁불사론자라는 점에서 같지만 매파가 될 수 없는 근본적 차이를 지닌다. 그것은 바로 전쟁은 좋지만 내 목숨은 귀하다는 사익추구성향이다. 이런 사익추구성향으로 인해 전쟁불사를 외치지만 정작 자기 죽을 자리에는 절대 가지 않으려 한다.

한국에서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 하나 있는데 굳이 콕 집어 말하지는 않겠다. 호전적 이기주의자(WS)들은,비유를 하자면, 매가 아니라 까마귀과에 속한다.까마귀는 매로 위장하여 새들을 위협한다음 도망간 새들의 둥지에 자기 알을 낳는 데 능하다. 매의 위세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기 씨를 퍼트리는 까마귀의 생존전략은 여우가 호랑이없는 곳에서 호랑이 행세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마치면서
이번 뿐 아니라 앞으로도 투표하지 않는다. 내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투표가 권리가 아니라 분노와 저항, 연대의 밑거름이 된다면, 기꺼이 모두를 위해 한 표를 행사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미안하다.

참고
이모셔노믹스에서 페이셜 코딩이라는 재밌는 기술을 소개하던데, 오세훈의 기자회견을 페이셜 코딩으로 분석해보면 어떨까? 아마도 가식적이라고 나오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