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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감자

변화와 삶의 방식

세상에 변하지 않는 사실은 세상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발전으로, 때로는 퇴보하며 세상은 변화한다. "변화하다 보니 어느새" 라는 광고처럼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다 보면 전혀 다른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사람도 변한다.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화를 추진하는 사람이 있고, 수동적으로 마지못해 변화에 끌려가며 적응하는 사람도 있다. 서로 다른 변화에 대한 관점과 삶의 방식은 많은 충돌을 일으킨다. 어제의 방식이 오늘은 통하지만 내일은 통하지 않을 거라는 예상을 하게 되면, 변화를 추진하는 쪽과 현재에 안주하려는 쪽이 충돌한다. 오늘도 별 탈 없는데, 굳이 내일을 왜 준비해야 되겠는가? 사람은 본성상 변화를 싫어하는 보수적인 면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까탈스러운 자연환경과 외부의 침입에 대비하며 긴장 상태로 지내면서 안정을 갈구하지 않았을까?

진짜 충돌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 할 때 더 크게 벌어진다. 다른 사람에게 변화를 권하거나 강권할 때는 미래의 불특정 시점에서 지금 현재의 상태가 더 이상 가치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걸어오고 지키고 있는 삶의 방식을 부정하는 일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삶의 방식을 부정당할 때 가만히 있겠는가?

서점에 가득 쌓인 자기 계발서들은 모두다 독자들에게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라고 이야기한다. 일찍 일어나고, 남보다 반 걸음은 먼저 내딛고, 긍정의 에너지를 쏟아붓고, 타인을 배려하고,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칭찬으로 고래를 잡고, 리더십을 고양시키고, 미래를 준비하고, 피드백에 귀 기울이고, 메모도 잘 하고, 기타 등등. 이렇게 살려고 보니 거의 완전무결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 삶이 가치가 있을까?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변화를 주도하는 적극적인 사람들 뿐이라면 어떻게 될까? 세상의 모든 일들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현 상태를 유지시키는 다수의 보이지 않는 묵묵한 헌신이 있어야만 그 토대를 바탕으로 변화와 발전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모두가 적극적인 변화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살아남는다고 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에 떠밀려 다닌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무섭다. 어느 날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날 때 한번 쯤 다시 생각해야 한다.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이전의 자신을 스스로 부정하고, 그 위에 새로운 나를 만든 결과이다. 자신을 부정하고 변화하기가 어디 쉬우랴. 그래서 뼈를 깍는 고통으로 하루 하루 조금씩 변화를 위해서, 삶에서 변화해야 한다. 옛말에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고 하지 않던가. 내 경험에는 성공과 돈에 갑자기 눈이 멀어 피라미드에 빠진 사람들이 갑자기 무섭게 변하는 것을 봤다. 사람이 변한다는 것이 꼭 달가운 일만은 아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삶의 방식은 과정이다. 생각과 경험을 통해서 적절한 삶의 방식을 "선택"한다. 사람들이 하루 하루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사람만큼이나 다양하다. 어떤 이는 어떻게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이야기하고, 어떤 이는 책을 통해서, 체게바라는 모토 싸이클을 타다가, 누군가는 종교적 깨달음이나 각성을 통해서 직접 선택하기도 한다.

나 또한 사회와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했다는 축에 든다고 보여진다. 이런 사람들의 경향 중에 하나가 측정할 수 없이 넓은 오지랖이다. 다른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간섭하고, 충고하고, 변하지 않는 것에 초조해 한다. 자신의 삶이 어떤지는 뒤돌아보고 성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내가 가진 생각이 옳다는 전제하에 타인의 삶의 방식, 인격을 부정할 가능성이 크다. 

가까운 송년 모임에서 내가 큰 실수를 했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내 삶의 방식과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이 후배라는 이유로 이래 저래 잔소리를 했다. 나에게는 잔소리이겠지만, 후배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솔직히 모르겠다. 그런 생각에 전화로 사과를 했는데, 내 생각이 잘 전해졌을지 모르겠다. 부디 잘 전해졌으며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