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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버린 것들 잃어버린 것들- 박노해 노래방이 생기고 나서사람들은 방문을 벗어나면노래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내비게이션이 나오고 나서택시 기사들마저 모니터를 벗어나면길눈이 어두워져 버렸다 컴퓨터가 나오고 나서아이들은 귀 기울여 듣고 기억하고가만히 얼굴을 마주 보는 법을 잃어버렸다 자동차 바퀴에 내 두 발로 걷는 능력을 내주고대학 자격증에 스스로 배우는 능력을 내주고의료 시스템에 내 몸 안의 치유 능력을 내주고국가 권력에 내 삶의 자율 권력을 내주고하나뿐인 삶으로 내몰리면서 나는 삶을 잃어버렸다 더보기
길 잃은 희망 길 잃은 희망 우리가 길을 잃어버린 것은 길이 사라져 버려서가 아니다 너무 많은 길이 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 어둠이 깊어져서가 아니다 너무 현란한 빛에 눈 멀어서이다 우리가 희망이 없다는 것은 희망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다 너무 헛된 희망을 놓지 못해서이다 이 지상에 나는 단 하나뿐이듯 진정한 나의 길은 단 하나뿐인 길 수많은 길을 갈팡질팡해도 결정적 한 걸음이 없다면! 모두가 달려가는 그 길로 사라지리라 참사람의 숲에서 박노해 2011 09 27 더보기
[숨고르기] 가사삼성家事三聲 가사삼성家事三聲 가사삼성이란 말을 아시는지 예부터 집안에는 세 가지 소리가 끊이지 않아야 그 집이 잘 된다는 말 집안에서 늘 책 읽는 소리가 나야 하고 아기 울음소리와 베 짜는 소리가 끊이지 않아야 좋은 집안이 될 수 있다는 말씀 그랬다 예전엔 그랬다 오늘의 가사삼성은 무얼까 집안에서 영어 소리가 들리고 TV 소리가 들리고 자판기 두드리고 클릭하는 소리가 들리면 되는가 한 밥상에 둘러앉은 식구들 웃음소리가 들리고 좋은 벗들이 찾아와 담소하는 소리가 들리고 저마다의 가슴에 신성한 침묵의 노래가 끊이지 않는 집안에 좋은 삶이 있으니 참사람의 숲에서 박노해 2010 07 13 더보기
숨고르기 - 거짓말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는다 하나의 거짓이 두 개의 거짓을 낳고 두 개의 거짓이 네 개의 거짓을 낳고 네 개의 거짓이 열여섯의 거짓을 낳고 숨기고 꾸밀수록 더 많은 거짓을 부른다 거짓말은 간단하고 편리하지만 거짓말은 복잡하고 기하급수를 부른다 거짓은 통제할 수 없는 그림자 킬러가 되어 도처에서 주인에게 방아쇠를 당긴다 진실은 단순한 것 정직은 단단한 것 진리는 단아한 것 거짓은 늘어날수록 얇아지고 거짓은 겹쳐질수록 금이 가고 거짓은 오래갈수록 썩어가서 거짓이 진실을 키우는 거름이 된다 시간은 언제나 진실의 편이다 정직은 언제나 최선의 길이다 거짓은 언제나 스스로 배반한다 참사람의 숲에서 박노해 2010.05.18 더보기
[숨고르기] 오직 아이들에겐 오직 아이들에겐 아이들은 그저 자연과 마을 속에서 마음껏 뛰놀고 일하게 하면 된다 야생의 생명력이 제 안에 살아나도록 하지막 그 안에 거룩한 시비 어떤 신성한 침묵이 깃들지 않으면 야생의 열정은 영혼을 잠식한다 아이들에겐 오직 자연 속의 놀이와 마을 속의 노동과 적당한 지식과 넘치는 우정이면 충분하다 그저 미래에서 온 아이들을 믿어라 보고 너 자신을 사랑 보여라 그것이 최고의 사랑이고 최고의 배움이니 참사람의 숲에서 박노해 2010 05 04 더보기
[숨고르기] 눈 내리는 3월의 나비 한 마리 숨고르기 눈 내리는 3월의 나비 한 마리 눈 내리는 3월 겨울 나비 한 마리를 본다 꿈인 듯 눈송인 듯 처음 깨어나 여린 날개로 안간힘을 쓰며 눈보라를 뚫고 전진하는 흰 나비 한 마리 찢긴 날개에서 점점이 떨어지는 붉은 핏방울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우리가 이대로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아 나는 모른다 나는 모른다 저 겨울 나비의 고독한 날개짓이 여름의 폭풍을 몰고 올지 저 찢긴 날개의 핏방울이 봄의 꽃불로 타오를지 낡은 세대의 고치를 찢고 푸른 숨결이 부르는 자신들의 미래를 향해 눈 내리는 3월의 흐릿한 허공을 비틀거리며 나아가는 겨울 나비 한 마리 봄의 전위 참사람의 숲에서 박노해 2010 03 16 더보기
[숨고르기] 삶의 무게로 삶의 무게로 옳은 길인 줄 알면서도 먹고 살아야 하기에 망설일 때면 고향 어르신들 말씀이 울려온다 산 입에 거미줄 치는 법 없다 사람은 다 제 먹을 건 가지고 태어난다 길게 보면 삶에서 지름길은 없다 정도正道가 제일 빠른 길이다 수많은 사건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씀들 스스로 살아낸 진실만을 나직히 들려주시던 고향 어른신들 말씀이 뜨겁게 울려오네 어느 성인의 말보다 더 경건하고 어느 지식인의 말보다 더 날카로운 대지에 뿌리 박은 삶의 무게로 참사람의 숲에서 박노해 2010 02 09 더보기
[숨고르기] 내가 먼저 숨고르기 내가 먼저 불 꺼진 벽난로에게 말해보라 나한테 열기를 먼저 주면 장작을 던져준다고 말라붙은 옹달샘에게 말해보라 나한테 샘물을 먼저 주면 깊이 파 주겠다고 절망어린 현실 구조에게 말해보라 나한테 희망을 먼저 주면 내가 변화해 나서겠다고 이 지상에 계절을 이겨내는 꽃은 없고 자기 시대를 초월하는 인간은 없다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 좋은 삶을 앞서 살아내면서 미래의 빛으로 저항하지 않는다면 좋은 세상이 와도 텅 빈 삶의 그릇일 뿐 참사람의 숲에서 박노해 2010.01.26 더보기
[숨고르기] 발바닥 사랑 숨고르기 발바닥 사랑 사랑의 중심은 머리가 아니다 머리는 너무 빠르게 돌아가고 생각은 너무 쉽게 뒤바뀐다 사람의 중심은 가슴이 아니다 가슴은 너무 빠르게 식어가고 마음은 날씨보다 변덕스럽다 사람의 중심은 발바닥이다 대지와 입맞춤하는 나의 발바닥 현장에 딛고 선 나의 두 발바닥 내 영혼이 깃든 발이 그리로 걸어갈 때 머리도 가슴도 마음도 함께 따라가지 않을 수 없으니 사람은 발바닥이 가는 대로 생각하게 되고 발바닥이 이어주는 대로 만나게 되고 그 관계에 따라 삶 또한 달라지리니 지금 나 어디에 서 있는가 지금 나 어디로 가고 있는가 참사람의 숲에서 박노해 2010 01 19 더보기
숨고르기 별은 숨고르기 별은 망원경을 메고 온 친구가 별자리를 보러 가자고 부릅니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 그만둡니다 나는 북두칠성 말고는 별자리 이름 하나 외우지 못하지만 그렇게는 별을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별은 어느 조용한 밤 느닷없이 내 가슴에 쑤욱 들어오는 거 아니던가요 당신, 당신을 처음 안은 그날 밤처럼 밤 언덕에 홀로 앉아 눈물짓다가 별은 그만 내 가슴에 쑤욱 들어오는 거지요 나는 그만 은하수 속으로 쑤욱 들어가는 거지요 별도 시도 사랑도 우정도 삶에서 별처럼 빛나는 것들은 다 참사람의 숲에서 박노해 2009 12 22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