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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이야기

스티브 잡스와 이건희, 천재와 영재에 대하여

2011년 10월 6일 아침, 스티브 잡스 사망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탁월한 실행가였던 스티브 잡스를 길이 기억하겠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건강때문에 휴가를 가고, 언론에서 시한부라는 이야기와 사진이 나오고 있더군요. 오래전부터 이 주제를 꼭 다뤄 보고 싶었는데, 늦으면 안될 것 같아 아직 설익은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천재와 영재의 차이는 무엇일까? 
둘다 똑똑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임에는 틀림없는데,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천재 : 그림을 그린다.
영재 : 그림을 보고 이해한다.
수재 : 설명을 해줘야 이해한다.
평범 : 설명을 해주고, 공부를 해야 이해한다.

잡스는 천재, 이건희는 영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30년 가까이 두 사람이 사업을 전개해온 모습을 보더라도 잡스는 스스로 그림을 그려서 사업을 만들어가는 천재라면, 이건희는 그려진 그림을 보고 나서야 사업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죠.

에버렛 로저스의 개혁의 확산(Diffusion of Innovation)에 따라 분류해보면, 잡스는 혁신자(Innovator), 이건희는 초기수용자(Early Adopter)로 보인다. 

신기술 수용자들이 그 기술을 채택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의 시점에 그 기술을 채택하는 사람들의 발생 빈도를 표 위에 점을 찍어 나타낼 때, 그 결과 나오는 곡선은 종형(bell-sharped)이다. 이 곡석은 따라 기술 수용의 특징을 검토하고 표준편차를 활용해 로저스는 새로운 것을 수용하는 경로에는 5개의 핵심 집단이 있음을 규명해 냈다. 곡선의 가장 왼쪽에는 2개의 주요 집단인 혁신자(Innovator)와 초기수용자(Early Adopter)가 있다. 그 다음 초기다수자(Early Majority), 후기다수자(Late Majority), 지체자(Leggard)가 각각 그 뒤를 따른다.
로저스의 곡선에서 혁신자는 특정 영역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져와서 그것을 시장에 소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시스템이나 시장 속으로 유입되는 새로운 아이디어들의 흐름을 관리하는 수문장으로서도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마케팅 담당자들의 표적인 듯 보이는 혁신자와는 달리, 흥미로운 혁신의 단계에서부터 주류가 수용하여 시장 장악에 성공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신제품을 움직이는 촉매제로 밝혀진 것은 초기수용자, 즉 얼리어탑터다. 에버렛에 따르면 "다른 그 어떤 부류보다도 얼리어답터는 대부분의 체제 안에서 최고 수준의 오피니언 리더가 될 자격을 갖추고 있다". 본질적으로 혁신자는 어떤 제품과 기술이 특정 시장에 도움이 될지 판단할 수 있는 선견지명을 가진 반면 얼리어답터는 그 이후의 채택 방면에 일가견이 있어 시장에서 히트작을 만드는 데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 검색의 경제학: 세상을 읽는 또 하나의 프레임, 218




잡스는 애플 컴퓨터를 만들면서부터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장에 소개하는 역할을 해왔다. 애플, 맥킨토시, 3D 영화, 아이팟, 아이폰 등등. 그에 반해 삼성은 스스로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고 할만한 게 없다. 시장에서 괜찮을 것으로 보이는 상품의 가치를 알아보고 그들의 경쟁우위인 빠르고 정밀한 소통구조를 이용하여 재빠르게 개선된 상품을 내놓는 전략을 사용해왔다. 반도체, 자동차, 핸드폰, LCD, 김치냉장고 등등 어느 것 하나 먼저 내놓은 상품을 찾기 힘들다. 이건희의 삼성은 이건희의 영재성에 맞춰 고도화된 자본과 잘 조직된 조직과 소통구조로 2등 전략을 수행하는 기업문화를 가진다. 따라서 이건희가 "10만명을 먹여살릴 천재가 필요하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잡스는 머리만 좋은 천재일까? 아이팟은 아이디어의 산물일까?
잡스는 머리만 좋은 천재가 아니다. 그에 대한 책들을 보면 괴짜에다가 꼴통이고, 굴곡이 많은 인생을 살아왔다. 자신이 생각해낸 것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조직을 하나의 목표로 향하게 하며, 열정과 긴장을 모두 불어넣는 실행가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팟의 성공요인이 잡스의 기발한 통찰력과 아이디어와 삼빡한 디자인 덕이라고들 한다. 나는 그런 부분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이팟의 성공은 아무도 해결하려 하지 않은 엄청나게 크고 많은 음악 권리 집단을 곡당 1$로 계약하고, 사용자들에게는 합법적인 음원 소유 문화를 만든 선순환 구조에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통합적인 음악 서비스를 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권리관계의 복잡성 때문에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저작자, 제작자, 실연자, 각종 협회, 음반사 등등 그 복잡성은 그 끝이 없을 정도다. 잡스는 그 복잡한 문제를 1$로 해결했다. 그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단체와 기업, 저작자들과 논의와 타협을 하고, 흥정을 했을까? 1$ 뒤편에서 어떤 정산이 이루어지는지는 우리가 알 필요도 없다. 단지 모든 노래를 1$로 손쉽게 내 것으로 만들어 들을 수 있다는 점, 이를 이루어냈다는 점이 잡스가 단지 머리만 좋은 천재가 아니라,
진정한 실행가라 할 수 있겠다.

아이폰을 만든 잡스, 안드로이드를 사용하는 이건희
애플의 행위 시스템 도식 http://twitpic.com/2d1yvh 
Designing Business:New Models for Success, Heather M.A. Fraser,



위에 소개한 그림만 보더라도 애플 또는 잡스가 아이폰까지 나아가는데 아주 복잡한 여러가지 요소들이 필요하며 통합했다 것을 쉽게 알수 있다. Fraser 교수는 분석 차원에서 저런 그림을 아주 맛깔나게 그려주었지만, 과연 잡스는 저런 그림을 그렸을까? 내 생각에는 그냥 머리 속에서 저 정도는 3차원으로 펼쳐질 것 같다. 물론 저 그림은 아이팟까지이니, 아이폰까지의 그림은 4차원으로 그려야 할 것이다. 위 그림에서 이건희의 삼성은 마케팅과 Low-Cost Production 말고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안드로이드를 사용해야 했다. 물론 바다 플랫폼이라고 있긴 하지만 누가 사용하는지.

아이폰이 wifi를 사용하는 인터페이스를 연 최초의 핸드폰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는 wifi를 사용한다는 측면보다, 수십년간 인터넷을 통해 발전하고 통합되어온 OSI7 Layer를 사용하는 표준화된 통신방식을 사용자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또 한번의 혁신이다. 8-90년대 열악한 사설BBS에서 하이텔등의 모뎀을 통한 독점적인 통신 방식을 사용하다가, 자유롭게 모든 통신을 사용할 수 있는 개방형 인터넷으로 90년대 중반 넘어왔다. 이 개방성은 데스크탑과 서버에만 적용되는 기준이었고, 사업자들의 독점적이고 지배적인 사업방식으로, 비싼 사용료를 지불하는 무선인터넷 말고는 우리가 가진 단말기로 통신할 방법이 없었다. wifi 인터페이스를 폰에 장착하는 비용은 얼마 안되지만, wifi 망을 전국에 개설하는 비용은 절대적으로 비싸며, 수익도 없었기 때문이다. 독점에 대항하는 방법은 독점이 유지되는 토대를 공격하고 혁신하는 길 뿐이다. 따라서 잡스가 아이폰에 wifi를 채택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니었을까? wifi망을 소유하지 않은 잡스가 wifi를 여는 방법은 통신업자를 설득하는 길뿐인데, 역시 그는 해냈다. 멋진 실행가이다.

잡스가 한국에 태어났다면 용산에서 딜러를 하고 있을 거라는 유머는 맞는 것인가?
잡스가 한국에 태어났다면? 잡스는 아마도 실리콘밸리로 뛰어들었을 것이다. 이게 답이고, 잡스에 대한 정당한 평가라 생각한다. 자신이 생각한 것을 끝끝내 이루어내고 맞는 정신을 가진 잡스는 절대 환경을 탓하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삼성의 이건희는 왜 10만명을 먹여살릴 천재를 이야기하는가? 
2003년 6월 이건희 회장은 탁월한 천재 1명이 1,000명, 10만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천재 경영론"을 왜 이야기했을까?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이 천재론에 대해서 아주 부정정인 글들이 대부분이다. 위험하다는 생각, 엘리트주의 등등.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다르다. 삼성과 이건희 회장의 입장에서는 "천재"가 필요하다. 아주 절실하게 필요하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삼성은 이건희의 "영재"성으로 탁월한 얼리어답터로써 2등전략으로 성장해왔다. 지금까지의 성장이 먹혔던 것은 자본의 독점성과 국가와의 밀착, 관리의 삼성 등이 결합된 결과이다. 그러나 점점 세계화의 물결속에 삼성 자체도 소유와 시장 모두 세계화되어 "한 순간"의 문제로 바뀌어 버렸다. 그동안은 국가권력과의 밀월이나 전관예우, 노동자에 대한 탄압, 높은 급여체계등으로 지킬수 있었지만, 이제는 한방이다.  하나 잘못 판단하거나 잘못 대응하면 벼랑으로 떨어진다. 

더 큰 문제는 이건희 자신의 지속성이 크게 제약받고 있고, 자식에게 사업을 물려주는 구조에서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 이제껏 새로운 사업의 영역이나 진출은 이건희의 "영재성"있는 판단과 결정이 많았으나, 앞으로 이런 구조가 지속될 수 없다. 현상유지는 하겠지만, 혁신이나 얼리어탭터는 어렵다. 자식들에게 공평하게 부를 넘겨주기 위해서 삼성을 계열분리하고 있어 이전에 가졌던 규모의 경제에서 소통 구조의 정밀함이 떨어질게 분명하다. 그리고 e삼성이라는 벤처 사업에서 보았듯이 3세 이재용은 잡스와 같은 천재성도 실행력도 보여주지 못하고 망했다. 이건희 입장에서는 국내에서 수성과 세계에서 공성을 함께 해야할 필요가 있지만, 아직까지 조직이 이 문제를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우리사회는 "패자" 또는 "루저"가 되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는 사회 시스템이다. 잡스도 실패했었다. 하지만 다시 기회가 주어졌고, 일어섰다. 우리 사회는 무너지면 그걸로 끝이다. 삼성도 패자나 루저가 될 수 있다. 이제까지는 잘 버텨왔다. 앞으로는 모른다. 그래서 이건희는 더 긴장하고 있는지 모르며 10만명을 먹여살릴 "천재"를 간절히 찾는지도 모른다. 

끝으로, 이건희가 천재를 이야기하면 욕먹는다. 잡스는 천재로 떠 받든다.
천재는 필요한가? 천재가 세상을 바꾸어가는가?
머리만 좋은 사람이 천재라면 천재는 불필요하며 세상을 바꾸지도 못한다.
자원과 기술, 과학, 사회의 통합자로써 천재는 필요하다. 탁월한 통찰과 지칠줄 모르는 열정과 실행력을 가진 천재는 세상을 바꾸어가며 먹여살리는 것이 아니라, 10만명과 함께 더불어 나누며 먹고 산다. 

스티브 잡스가 건강하게 다시 돌아오길 간절히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