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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감자

2012년 국회의원 선거 관전평

10.26 DDOS와 민간인 사찰같은 결정적인 패착에도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2012년 총선에서 과반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었다. 80-100석만 건져도 다행이라는 평가를 무색하게 152석을 차지한 새누리당과 진두지휘한 박근혜의 능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언론과 정치가들의 평가는 통합민주당의 실수와 김용민의 막말 파동때문에 졌다고 연일 대서특필하고 있지만, 일부 현상만 보고 있어 안타깝다. 사실은 박근혜와 새누리당, 현재 권력을 쥐고 있는 집단의 승리다.


1. SNS라는 우물에 갖히다

먼저 보수 승리를 이끈 최대 공신은 "SNS에서 선거운동 합법화"이다. 정치권과 진보진영, 젊은 세대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지만, "SNS에서 공간에서만 선거운동 합법화" 완전한 꼼수다. SNS에서 선거운동을 한다는 발상이 잘못된 것인데, 새로운 기술과 스마트라는 무기를 들고 뛰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보기 좋은 "엿"이다.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실시간으로 소통한다는 말 자체가 구라다. 소통이란 "공감"과 "이해"를 기반으로 한다. 멀티태스킹하듯이 이리 저리 옮겨다니며 스크롤하며 많은 트윗-글들을 읽고 답글을 다는 것은 그냥 "반응"일 뿐 "소통"이 아니다. 아직도 진보 진영은 "반응"을 "소통"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반응"하는 집단이 전체 유권자의 10%도 안되며, 어차피 이들은 "보수"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꼼수의 주인공들은 꿰뚫고 있다. "스마트세대"에게 "SNS" 라는 신세계처럼 보이는 작은 우물에 놀게 해주면, 막힌 되먹임 고리(closed feedback loop)에서 "대세"를 잡았다고 쉽게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SNS" 우물을 개방해주고, 그안에서 열심히 뛰놀라고 해주었을 뿐이다.

현실로 돌아와서 하루 종일 즉각적으로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반응하면서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있을까? 은행에서 일을 처리하는 은행원이 스마트폰으로 트윗을 하고 있다면 기분 좋을 사람이 있을까? 거의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은 SNS 인구의 1-5%도 안되는 수준일 것이다. "SNS에서 선거운동 합법화" 꼼수는 5%미만의 작은 우물에서 마음대로 뛰놀고, 거리나 시장으로 나다니지 말라는 의미이다.

실제로 선거운동에 관련하여 정치의 자유, 언론의 자유, 사상의 자유 등에 대해서는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오직 작은 우물 하나 열어줬을 뿐이다. 작은 우물 하나 열어줄 때는 위와 같은 계산은 누구나 다 해봤을 것이고, 이에 따라 선거 전략은 첨단과 반대로 하면 된다.


2. 어깨를 내어주고 가슴을 찌른다

박근혜의 선거운동을 보면 "어깨를 내어주고 가슴을 찌른다"는 말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보수에게는 거의 도움되지 않는 "SNS" 어깨를 내어주고, 보수 진영에 무한대의 헌신을 통해 "가슴"을 찔렀다. 이 "가슴"은 감성으로 전달된다. 박근혜는 선거 시작하자 마자 오른손에 붕대를 하고 나타났다. 어느 신문에서인가 젊은 청년이 악수를 거부했다는 사진도, 붕대를 한 오른손에 깔아 뭉게진다. 박근혜는 무리한 일정을 짜가면서까지 진보가 버린 여러군데의 밭에 깃발만 세우고 텃밭으로 만들었다. 무리한 일정 탓에 과속과 비행기 시간을 지연시키는 나쁜 모습들이 나타났지만, 반대로 텃밭으로 편입된 사람들에게는 "노력한다는" 감성의 신호를 줬다. 합리적으로 교통질서를 지키고 다른 사람들의 비행기 시간을 지켜주는게 맞겠지만, 사람들은 감성적으로 생각한다. 

"아, 박근혜, 정말 대단하다!! 저렇게 무리하면서 선거를 위해서 자신을 내 던지는구나!!"

진보 진영은 합리적으로 비난했지만, 선거의 결과는 박근혜의 "감성"의 승리다. 시간을 쪼개가면서 지역을 바쁘게 돌며 5-10분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소통이 되겠는가 생각하겠지만, 사람들은 5-10분 같이한 시간이 아니라, 헌신적으로 10분을 만든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노력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첨단을 입고 들고 다니는 자아도취에 빠진 진보가 내팽개친 밭에 가서 깃발만 꽂으면 되는 쉬운 "게임"을 했다.


3. 전투는 내가 원하는 곳에서

부산에 출마하는 문재인을 향해서 내놓은 필살기는 손수조라는 젊은 여자다. 3,000만원으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당당한 포부와 함께, 박근혜의 든든한 지원까지 덤으로 받았다. 문재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무슨 회괴망측한 일인가 생각을 하고, 손수조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박근혜가 내놓은 손수조라는 패는 버리는 패다. 버림으로써 승리를 취하는 패다. 이 패를 받아든 문재인에게는 계륵 패다. 받아들 수도 없고, 내칠수도 없는 패다. 선거 결과가 승리로 나와서 다행이라 생각하겠지만, 지면 개망신인 패였다.

박근혜를 중심으로 한 선거 두뇌들은 판을 잘 읽었고, 그 판을 뒤집어 엎는데 성공했다. 부산이라는 곳에서 한 석을 내어주는 문제가 아니라, 낙동강 벨트를 잃는냐 마는냐의 문제로 접근했다. 자신들의 역량을 올인할 수 없다면, 상대방의 전략의 머리를 두들겨 패는 전술을 던져야 한다. 문재인이 만든 요충지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웃음거리로 만들고, 노련한 문재인VS패기의 손수조 라는 얼개로 싸움을 변질시켰다. 다름 아닌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 흐리는 전술이다.

문재인과 민주당은 손수조라는 패를 받는 순간 당황하지 않았나 싶다. 문재인은 싸움이 진흙탕으로 빠진 순간 진흙탕으로 나와서 전국을 상대로 하는 움직임을 만들어야 했다. 문재인은 계속해서 손수조와 사상에 머물면서 스스로를 손수조급으로 하향시켜 버린 꼴이 되었다. 손수조는 이기든 지든 "전국구 레벨"에 싸워서 장렬히 전사한 전국구급 별이 되었지만, 문재인은 자신의 지역구에서 아이 하나 감당하기 벅찬 "지역구 레벨"로 떨어지게 되었다. 기가 막힌 "한 수"였던 셈이다.


4. SNS와 이외수

위에서 말한 것 처럼 SNS는 소통이 아니다. 이번 총선에서 이외수의 새누리당 지지 발언은 지금까지 SNS로 이뤄졌다던 "소통의 본질"이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우리나라 트위터 팔로우 1위라는 이외수는 고비고비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을 비판하는 트윗을 날려왔다.  어쩌면 이외수는 한번도 새누리당을 반대한다는 트윗을 날리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많은 트위터인들은 이외수는 반새누리당일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한다는 "트윗"은 어떤 문제도 없다. 이외수=반새누리당 이라고 생각하고 이외수의 트윗을 열심히 RT하던 사람들에게는 충격일 것이다. 천하의 이외수가 새누리당을 지지하다니!!! 스스로 과잉 해석으로 이외수와 소통해왔던 사람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과잉 해석의 배신을 맞이하게 된 것 뿐이다.

이외수 같은 유명인들은 많다. 한편으로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정치적인 발언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반쯤 드러내는 사람들에게 순간의 호응으로 "우리편"이라고 생각하고 편입시켜 둔다. 특히 유명 연예인들이 그런 애매한 "트윗"을 많이 날리고 입방아를 만들고, 사람들이 휘말린다. 결국에 가서는 "애매한 입장"과 밥먹이에 대한 타격이 없는 선에서 정리하는 깔끔한 소통을 목격하고 끝나게된다.

SNS는 소통이 아니라 자극과 반응일 뿐이다.


5. 투표 참가 독려와 투표의 품격

이번 총선에서 특이하게 벌어진 일들이 무슨 공약처럼 투표율 몇 %를 달성하면, 어떤 일을 하겠다는 유명인들의 공세였다. 지난 10.26때 투표율이 올라간 것에 특효를 봐서일까? 개나 소나 공약을 만들고 공표하고,언론과 SNS는 이런 공약으로 넘쳤났다.

투표는 고귀한 행위라고들 말한다. 헌법에는 권리로써 보장하고 있지만, 의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어쨌든 고귀한 권리라고 한다. 내가 투표를 하는 행위가 고귀한 행동인데, 왜 개나 소가 옷벗고, 춤추고, 아이돌 흉내를 낸다고 하는 것일까? 그런 행위가 대표적으로 1-2개일 때는 별 문제가 아니겠지만, 개나 소나 하게 되고 언론에 대대적으로 나온다면 역효과를 내게 마련이다.

투표율 달성에 대한 공약은 가관이다. 지들이 뭔데 옷벗고 사진찍고, 광화문에서 아이돌 춤을 추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춤을 추겠다고 하는 것일까? 투표하는 사람들에 대한 모욕이다. 이런 말도 안되고 변태같은 공약이 넘쳐나면 사람들은 고귀한 품격을 가진 투표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게 된다. 


투표 참가 독려는 게다가 아주 비겁한 투표 권유이다. 투표 참가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의 밑바탕에는 "반새누리당" 정서가 깔려 있다. "투표율이 높으면 새누리당이 진다. 그러니 투표해라." 이 말은 "투표하는 당신의 생각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가서 내 뜻처럼 투표하면 된다."는 무지막지하고 원대한 전략이 존재한다. 투표가 고귀한 행동이고, 개인의 행동에 국한된 문제인데, 내가 투표를 하던 말던 왜 타인이 간섭하는 것일까? 차라리 "당신이 내가 지지하는 **당과 후보를 찍었으면 한다. 이유는 1, 2, 3 이다"라고 이야기하면 들어는 줄만하다. 그런 정치적 입지나 견해도 없이 투표만 하라고. 사람을 "투표하는 기계"로 전락시킨다.


6. 김용민과 막말 파동

김용민의 막말 파동은 정말 끝내주는 결정타였다. 

김용민의 막말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김용민이 대처한 행동이었다. 김용민은 수감된 정봉주의 지역구에 전략공천을 받은 사람인데, 그에 행동에서 전략이란 찾아볼 수 없다. 

먼저 김용민의 막말은 잘못인가? 당연히 심각하게 잘못된 발언이다. 김용민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전쟁 범죄에 대한 적나라한 표현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는다. 옹호하는 사람들의 입장이 합리적이라면, 사람들은 감정적이다. 김용민이 잘못이 아니라면, 왜 강용석은 붙잡고 늘어졌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공평성의 원칙에 따라 냉정하게 평가하면 강용석이 3정도의 잘못이라면 김용민은 10정도의 잘못된 발언을 했다.

김용민의 대처는 아이러니다. 끝까지 완주하겠다는 의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는 막말에 대한 사과 행동으로 성경을 끌어안고 금식기도를 한 사진을 대중에게 보여주었다. 거기다가 목사의 아들이고 신학대학을 나오고 독실한 크리스천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아연실색한다. 

막말과 크리스천-성경-목사아들.

무엇이 연상되는가?

나는 비겁한 변명과 양아치가 연상된다. 

사과를 한다면 쿨하게 사과하고 받아들이면 되는데, 비겁하게 목사-크리스천-성경을 끌어안았다. 사람들은 혼란을 느낀다. 

도대체 저 자식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 나꼼수. 현재 저자식은 나꼼수에 출연하는 저질 막장이지~~.

나꼼수는 스스로 저질을 표방하고, 권력도 언론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슈를 만들어내고 확대재생산하는 편집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언론이며, 수많은 사람들을 정치적인 행동을 이끌어내기 때문에 권력이다. 나꼼수와 김용민은 자신들이 저질이어도 상관없지만 이제는 "언로"이고 "권력"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해야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하위문화가 지배적인 상위문화에 들어갈때는 이전의 하위문화와의 단절이라는 의식이 필요한데, 그런 의식을 생각하지 못하는 기획자라면 문제가 많다고 하겠다.


7. 박근혜, 친일파이자 유신의 잔당인가?

박근혜를 표현할 때 친일파이자, 유신의 잔당이라고 한다. 난 절대 동의못한다. 내가 동의한 적은 없지만 우리 법체계는 "연좌제"를 금지한다. 박근혜에게 친일과 유신의 표딱지를 애써 붙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박근혜를 상대진영의 리더와 보스(적당하게 골라잡자)로써 생각하지 않고, 끌어내려야하는 적군으로만 생각한다. 거기다가 덧붙여 개인적인 미혼과 여성이라는 약점을 가지고 군대도 안가본 사람이 국군을 통솔할 수 있는냐고 비아냥 거린다.

박근혜를 상대 진영의 리더로 생각하지 않고, 과거의 유산에 휩싸여 빌붙어 살아가는 정치인이라고 본다면 이번 대선도 틀림없이 진다. 박근혜는 보수 진영에서 몇 안되는 대통령감이다. 박근혜가 잘하지 못하는 것은 대통령이 아닌데도 언제나 정치적 입지나 발언이 대통령 위치에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점이다. 아마도 오랜 기간 청와대라는 궁궐에서 영부인 역할을 하고, 5-6공 시절 살아남기 위해 터득한 처세술로 보인다. 

더구나 박근혜는 위기에 빠진 보수를 건지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야권의 한명숙과 이정희를 보더라도 2-3배는 던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다 던진 것은 아니다. 많은 부분이 연출된 것이다. 선거가 시작된지 얼마 안되어 오른 손에 붕대를 감는 "눈물 나는" 스토리를 다시 시작하고, 전국을 순회하는 등등. 박근혜와 참모진들은 박근혜의 강점과 약점을 안다. 

토론회에 정치는 모른다는"조동원" 홍보 본부장을 내보내는 야심찬 배짱을 선보이지 않았던가. 정치가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는 "난 잘 모른다"는 답은 답답하지만, 한편으로 "잘 아는 놈들도 잘 못하는데.."라는 생각과 그래도 "모른다고" 순수히 답하는 매력을 던져주지 않았던가. 

놀라운 배짱이다. 토론회에 온갖 무기를 준비해서 새누리를 동강내고 찜 쪄먹으려던 야권들은 "어처구니" 없을 수 밖에. 이 또한 "싸울 곳은 새누리가 정한다"는 원칙으로 보인다. "토론회"는 싸울 곳이 아니므로, 퇴각해도 좋다는 전략이다.

박근혜를 인정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맨날 똑같은 결과만 나올 뿐이다. 제대로 된 "박근혜"에 대한 평가와 대응이 필요하다.


X. 마무리

삶이 쉽지 않아 한 번에 쭈욱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더니, 몇몇 생각의 단편들이 날아가 버렸다. 다시 생각해내려 하지만 안된다. 그냥 마무리다.


선거란 무엇인가?

정치에서 선거란 무엇인가?


"상대편 지지자도 마지막 표를 던지는 순간에 우리를 찍게 한다"가 선거의 핵심이라 생각한다. 편 나누기로 전선을 축소시키고, 흑-백으로 사람을 나누어 가능성을 버리면 언제나 똑같은 결과일 뿐이다. 가끔 운이 있을 뿐이다. 보수는 자신에게 표를 던지는 사람이 누구인지 신경쓰지 않는다.

선거에서 투표는 숫자로 집계한다. 표를 던지고 나면 단지 +1 인가 아닌가만 남는다.


투표율이 저조해서 말이 많다. 젊은이들과는 상대도 하지 않겠다고 한다.

투표할 이유가 없는 젊은이들이 투표하러 나오게끔 유도하지 못한 정치인들 잘못 아닐까? 투표해봐야 시급 4,500원의 삶은 그대로 일텐데, 안 한다고 달라지지는 않을텐데. 참가하고 싶어도 먹고 사는 문제로 투표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하루종일 스마트기기로 SNS와 인터넷을 서핑하는 여유를 가진 사람들은 이해 못하는 삶이 있지는 않을까? 우리는 이들을 어떻게 가슴으로 껴안을 것이며, 정치로 나오게 만들 수 있을까?

마음속 깊이 "권력"을 잡아 삶의 고통을 없애고, 개선시키겠다는 포부가 있다면 SNS가 아니라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보길 권한다.



아님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