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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감자

식당과 조직, 개편

사무실이 있는 건물 1층에 중국집 주인이 바뀌었다. 지난 주에 갑자기 문을 닫고, 내부 정비를 한다는 표지판이 붙더니, 이번 주부터 새롭게 영업을 시작했다. 주인이 바뀌어서 그런지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어떤 집인가 하고 화요일에 친히 방문을 해봤다. 사람들이 말하길 예전 중국집은 음식의 맛과 질에 있어서 절대로 가면 안된다였는데, 바뀌고 나서는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서 들어가 본 새롭게 연 중국집은 혼란 그 자체였다. 주문을 한참 기다려야 하고, 종업원들이 왔다 갔다하는데 깔끔하게 처리했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주문한지 15분이 지나서,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주문한 내용을 사장님께서 친히 다시 확인해주었다. 우리보다 5분 이상 먼저 와 있던 옆 테이블은 참 잘 기다린다.

주방은 몇 명인지는 모르겠지만, 테이블이 20개 안팍인 조그만 식당 홀에서 일하는 사람이 사장님까지 포함해서 5명이나 되는데, 깔끔한 봉사는 기대하기 힘들다. (대학생 처럼 보이는) 아들이 새로 개업한 부모님을 위해서 열심히 뛰고는 있지만, 어리수룩하다.


새 중국집을 보면서 조직과 구성, 개편, 조화로운 일하는 방식들을 생각해본다. 그 중국집에 일하는 분들이 각자 맡은 일에 대해서 얼마나 전문가인지는 모르지만,  "손발이 전혀 맞질 않는다"라는 느낌이다.

새롭게 구성된 조직은 일을 하면서 사람들간의 의사소통, 무엇을-어떻게-누가 할 것인가라는 가장 중요한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는데, 훈련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어떻게 이런 부분을 고도화할 것인지 방법론도 없을 것이며, 원활한 의사소통과 업무 향상을 위한 숙련 과정도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식당들의 모습이 이러할 것이다. 중국집을 예로 들자면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내오고, 손님이 나가는 탁자를 정리하는 일련의 과정이 테이블 회전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무리 주방장의 요리 솜씨가 좋더라도 이 기본 과정을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하면, 사람들이 바글바글하지만 실속이 없는 사업장이 되고 만다.


중국집과 가까운 곳에 닭곰탕을 하는 집이 있다. 규모는 조금 더 작지만, 그 집은 좀 특이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장님 얼굴을 보기가 힘들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음식을 준비하고, 식당을 정리하고 하는 모든 일들을 일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알아서들 척척한다. 물론 닭곰탕집 사장님은 시장에서 재료를 사오고 하는 일들을 하신다고 한다(안보여서 옆의 분이 물어본 적 있다). 이 집의 특징은 사장이라고 하는 리더가 없더라도 척척 계산까지 마무리되고, 매우 깔끔하게 진행된다는 점이다. 대개 식당 아주머니들이 그러하듯, 조선족 분이신 것 같고(굳이 물어보기 그렇지만 억양이...), 우리가 조선족에 대해 가진 편견처럼 일을 잘하지 못하는 허드레일을 하는 사람이겠지만, 일을 하시는 것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하루에도 몇번씩 흡연을 위해 1층을 왔다갔다 하며 느려터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보면 보게 된다.


사무실에 가까운 곳에 체인점 식당인 봉태* 식당이 있다. 여기는 갈때마다 놀라운 모습을 보게 된다.

테이블은 약 50여개. 일하는 사람은 사장 포함 6명-홀4명, 주방2명.

봉식당은 깔끔을 떠나서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 일하는 분들이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봉식당은 주문에 선택지가 없다. 월-금까지 미리 계획된 식단만 가능하다. 주방이 미리 준비한 음식을 내놓기 때문에 시간을 아낄 수가 있고, 리드타임을 줄이게 된다.

역시 식당안에서 주문을 받고 테이블을 정리하는 아줌마들의 모습을 본다면 단지 미리 준비된 식단 메뉴때문이라고 생각할수 만은 없다. 깔끔하게 맞춰입은 식당 단체복을 입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식당. 점심때만 테이블을 3번은 회전시키는 듯 보인다. 대박인 것이다.


불과 6개월 전만 하더라도 자고나면 자리와 조직을 개편하는 회사에 다녔다. 심할 때는 6개월동안 4번을 바꾼 적이 있다. 조직을 개편할 때 언제나 시뮬레이션 해본 결과 최상의 결과를 내는 방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짐을 싸서 자리를 옮겼다. 그것도 한 두번이지, 최상을 금방 바꾸게 되면 있던 관심마져 사라지게 된다. (게다가 자리를 바꾸는 일이 업무의 연장선인데도 자리는 업무시간에 바꿀 수 없다. 덴장.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 불과 4-5년만에 100명에서 700명까지 고도성장을 한 회사이니 그럴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정황들이 많다.)

잦은 조직 개편과 자리 이동이 플래써블한다는 유연한 조직구조일지는 모르겠지만,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최악의 조직일 가능성이 크다. 앞에 이야기한 중국집처럼 조직과 자리가 바뀌면, 일하는 방식이 바뀐다. 일은 몸에 붙고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유연한 조직 구조은 익숙해지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안되면 또 조직을 개편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조직을 개편한다.



새롭게 문을 연 중국집이 번성했으면 좋겠다. 멀리까지 식당을 안 찾아 다니면 좋은데, 또 파리날리는 집이 되면 또 하나 개척해야 한다. 귀찮다. 



NHS 소속 병원은 10년 동안 여러 차례 대대적인 개혁을 겪었고, 오늘날 영국 의사와 간호사들은 개혁에 지쳐 찌들어 있다. 어떤 조직 개편이든 간에 '자리를 잡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이제부터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고, 어느 양식을 써야 하며, 어떤 절차로 처리해야 하는지가 바뀐다. 조직개편에 따른 이런 변화들이 어떻게 일선의 실무에 반영되는 것인지 사람들이 새로 배워야 한다. 어느 환자가 갑자기 심근 경색 증상을 보일 때, '모범 의료처리 수칙'을 꺼내어 최근 조항을 뒤져보려는 의료진은 없을 것이다. 자리를 잡는 과정은 조직이 크고 복잡할수록 더 오래 걸리는 법이다. 110만명이 넘는 영국 최대의 피고용 인력을 거드린 NHS가 돛단배처럼 쉽게 방향을 바꿀 수는 없다. 영국의 간호사와 의사들은 아직도 10여 년 전에 도입된 변화들을 배우고 있다.

장인 : 현대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 90
리처드 세넷 저,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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