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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한국사 전19편, 난세에 서다 - 백헌 이경석

난세에 서다  백헌 이경석
http://www.kbs.co.kr/1tv/sisa/hankuksa/vod/1486970_2304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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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욕과 굴욕으로 얼룩진 병자호란,
이 수모의 역사가 새겨진 삼전도비.

인조는 4명의 신하에게
삼전도비에 새길 비문 찬술을 명령하지만
아무도 그 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다.
명분으로 사는 조선시대에 항복비문의 작성은
개인과 집안의 수치일 뿐 아니라
후대까지 오명을 쓰는 일이었던 것이다!

과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난세를 앞서 헤쳐간 명재상, 이경석
그의 파란만장한 삶이 한국사 傳에서 펼쳐진다.

척화의 한 가지 일은 진실로 바르고 명쾌하지만 나라 일과 민심은 믿을 만한 것이 없다. - 백헌연보
오늘의 사태는 모두가 명사들의 고론에서 비롯된 것이니 이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나라가 될 수 없다 - 연려실 기술

연소한 자들의 너무 얕고 과격한 논의가 끝내 이같은 화란을 부른 것이다.


척화파

군사가 모두 죽고 사대부가 다 죽은 후에 빌더라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국가가 망하더라도 그건 어쩔 수 없다.
왜냐면 명분과 의리를 지킨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도리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그거를 굽힌다는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가 망하더라도 인간으로써 도리를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주화파

이미 싸울 수도 없고 지킬 수도 없다면 화친 뿐입니다.
현실적으로 국가를 보존하는 것이 백성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거죠.
자기들의 개인적인 절경을 내세우는 것은 개인은 깨끗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국가와 백성들 굉장히 곤경에 빠지는 것을 방기하는 것은 치자로써 책무의식에서 어긋나는 것이다.

전후 수습이 급한 시기,  대부분의 유자들은 자기들을 내세우기 위해서는 자기가 주자학에 정통하다 보이기 위해서는 명분과 의리에 철저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인조 38권, 17년( 1639 기묘 / 명 숭정(崇禎) 12년) 3월 25일 임오 1번째기사

조강을 마치자, 영사 최명길이 일본에 사신 보낼 것을 계하고 이경석이 굶주리는 백성에 대해 계하다
이들은 나라의 존망은 도외시하고 명예만을 차지하려 하였으며, 같은 무리끼리는 감싸고 다른 무리는 배격하여 나라가 망하게 하였으니, 매우 가증스럽다. 그처럼 경박한 무리를 쓴들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此輩以國之存亡, 置之度外, 謀占美名, 黨同伐異, 竟使宗國覆沒, 甚可惡也


370년 전의 그날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당시 나라를 위해 순절한 이들을 기리는 현절사가 있습니다.
절의를 지키다 죽어간 삼학사(오달제, 윤집, 홍익한)와 척화파 김상헌,정온이 그들입니다.
과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이 명분을 위해 살다간 척화파뿐 일까요? 사실 그들의 이름이 기억될 수 있도록 남한산성의 문을 열어 주는 사람, 명예를 더럽혀 가면서 현실론을 쫓았던 주화파들이었습니다. 살아 남았기 때문에 이어질 수 있었던 역사 앞에서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명분론자

명분론자에 있어 임금이 오랑캐에게 항복한 것은 대의를 잃어버린 행동이었다.
따라서 더 이상 임금을 따를 수는 없었다.
신하는 임금에 대해서 그 뜻을 따르지 그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