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03월 12일 작성
합리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합리적이다
합리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합리적이다. (또는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요,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
탄핵안 가결을 바라보면서 계속해서 떠오르는 문구다. 헤겔이 법철학에서 사용한 문구라고 하는데, 탄핵안이 국회에 발의되고 통과되는 과정을 통해서 저 문구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지에 대해서 계속해서 고민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헤겔을 제대로 공부해 본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지만, 저 문구에 대해서만은 많이 들었기 때문에 쉽게 떠올렸나 보다. 과연 헌법재판소가 어떤 판결을 내릴지에 대한 추측에 대해서도 나는 헤겔의 사고를 빌리고자 한다.
헤겔과 함께 빌리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컴퓨터 세계의 컴파일러의 진화에 관한 이야기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려면 Visual C++, Delphi, gcc 같은 컴파일러가 있어야 한다. 컴퓨터 개발 언어를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형식으로 해석해서 만들어주는 컴파일러가 있어야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컴파일러는 무엇으로 만든다 말인가? gcc는 gcc 로 업데이트 되면서 발전하고 있다. 다른 컴파일러들도 자신의 낮은 버전으로 좀더 좋은 버전으로 개발을 한다. 그렇다면 최초의 원형이 되는 컴파일러는 무엇으로 만들었는가 하는 원초적인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즉 컴파일러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는? 이렇게 쫓아가다 보면 진공관 스위치를 움직이던 시절까지 가게 된다. 이야기는 거기까지 가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컴파일러가 진보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낡은 낮은 버전의 컴파일러가 있어야 하고, 그 컴파일러를 이용해 새로운 컴파일러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와는 좀 다르지만 자바의 경우, 자바를 하나의 컴파일러/인터프리터 체계라고 봤을 때, 최초의 원형을 제임스 고슬링이 C로 개발하고, 이 개발된 자바를 이용해 아서 반호프라는 사람이 자바를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내가 머리속이 좀 복잡한 것은 위 두개의 다른 이야기와, 두 가지 문제때문이다. 하나는 노무현이 불법적인 정치자금 수수등을 통해서 권력을 잡고 나서 그러한 체계를 일소하겠다는 개혁의 문제이고, 하나는 헌법재판소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이다.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헌법이나 법일반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관점으로 달라질 것이라 추측된다. 노무현은 순진하게도 헌재가 정치적인 해석이 아닌 법적인 해석을 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헌재까지 간 사안을 법으로 해석한다는 것이 과연 존재할 것인가? 헌재가 다루는 문제들은 적어도 일반 통용되는 법의 문제를 뛰어 넘는 것들이고, 이 문제들이 헌법이 추구하는 이상에 대해서 일치하는 것인가를 다루기 때문에, 법적인 해석을 할 수가 없다고 본다.
탄핵정국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첫번째 문제부터 다시 풀어보자. 노무현 후보가 경선 과정에서부터 대선 후보시절, 그리고 당선 이후까지 계속해서 정치개혁, 부패척결 등을 내세우면서 "대한민국"의 권력을 획득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그와 그의 참모들은 과거 집단들과 동일한 형태의 수수와 부정을 저질렀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권력을 획득한 이후로는 자신이 해왔던 일들에 대해서는 먼산보기를 하고, 구래의 집단들에게 개혁의 칼을 휘두른다. 권력을 획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이러한 태생적인 한계를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 개혁을 위해서 부정을 저지른다. 이는 결과를 위해서 과정을 무시한다와 동일한 의미이다. 그리고 어느 특정한 시점, 즉 권력을 쥔 순간부터는 과정을 중시한다. 그렇다면 순수하게 깨끗한 과정을 통해서 권력을 쥘 수 없었을까? 그랬다면 지금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까? 이와 같은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정국이 급박하다. 현실적인 여건이 어쩔수없다. 일단 하고 보자. !!" 여기에 대해서 선과 악의 구분을 두고 싶지 않다. 단지 이 "현실"이라는 것이 합리적인 것이랴는 것이다. 만약에 하나의 과정으로써, 즉 역사의 큰 물줄기의 흐름이라고 본다면 노무현이 취한 포지션은 어쩌면 정당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는 박정희나 전두환 쿠테타 세력과도 같을 수도 있다. 단지 권력을 획득한 수단만이 다를 뿐이다.
이제
탄핵정국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 두번째 문제를 추정해보자고 한다. 이 문제는 현재의 헌법재판소의 9인의 재판관의 헌법에 대한 소신이나 철학이 중요한 지점이 될 것이다. 헌법 또는 법일반의 이상이 이상의 추구라기 보다는 안정의 추구라고 본다. (어떤 이들은 안정보다는 보수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점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왜 보수가 아니고 안정인가? 그것은 법이 "합리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합리적이다"의 의미를 체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법이 보수만을 지향한다면 변화가 없을 것이고, 법이 변화만을 지향한다면 안정감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어떤 특정 시점의 현재에서는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현실적이고, 그 특정시점을 지난 시점에서는 현실을 헤치고 나온 것들이 합리적인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프로그램의 개발에서 많이들 적용을 한다. 프로그램도 하나의 아키텍처로 어떤 특정 구조로 굳어지게되면 진보적이고 진취적인 구현들을 곧바로 적용하지 않는다. 새로운 변화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마이너버전으로 테스트하기도 하고, 개발트리에서 가지를 뻗어 새로운 프로그램 형태를 취하면서 변화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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