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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감자

재신임과 부정부패, 설득의 심리학, 그리고 기타

재신임과 부정부패, 설득의 심리학, 그리고 기타

오랜만에 글을 쓴다. 한동안 쓰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또는 개인적인 게으름 때문에 머리 속에만 멤돌고 있던 것을 뱉어야 할 것 같다. 오늘 이야기는 다름 아닌 노짱의 재신임 발언과 설득의 심리학과의 관계다.

노짱의 재신임 발언이 있기 얼마전에 설득의 심리학이란 책을 봤다. 아직까지도 정독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지만, 끝까지는 봤다. 그리고 노짱의 재신임 발언이 나올 때, 순간 아.. 라는 탄식이 나왔다. 이건 고도의 심리전이다라는 느낌이 왔다. 단지 재신임을 하고 안하고의 문제라기 보다는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배짱 내지는 배포라고 해야 하나? 난 그런 배짱 배포를 좋아하지만, 사실 그만한 크기의 화두를 던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들 아는 바와 같이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에서는 빨리 하자고 나왔었고, 하룻밤 자고 일어나보니, 베갯잎 송사를 하고 나왔는지, 곧바로 입장이 돌변하였다. 그 시점에서 내가 읽을 수 있던 것은 보수/수구 세력들이 무서워하고 있는 것을 노짱이 카드로 제시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노짱은 재신임 투표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을 뿐더러, 설령 마음만이라도 하고 싶어다고 인정해도 객관적으로 할 수도 없었다고 봐야할 듯 하다. 그러면 노짱은 무엇을 노리는 것일까? 뭐 거야 내가 배속에 들어가서 그 심장안을 들여다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단지 보수/수구 세력들이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그리고 노짱의 지지세력으로 부터 무엇을 이끌어내려고 했는지 추적해보면 대충은 근접하지 않을까 싶다.

대선 지지자로부터 얻으려고 했던 점.
항상 아침에 버스를 타고 출근하기 위해서 뒷문으로 타기 때문에 졸라리 버스에 대해서 불만이 많다. 그리고 밤에 늦어 택시를 타면 과속/난폭/레이서 택시들 때문에 마음이 콩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버스와 택시를 타고 있으면, 혹시나 내가 탄 차가 신호를 제대로 지키거나 준법 운행을 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가끔씩 생긴다. 서울에서 준법 운행을 하면 10분에 갈 거리를 20분에도 못가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래서 내가 차를 타지 않고 바라보는 버스/택시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얼굴이 찌뿌려 지지만, 내가 타고 있을 때는 내가 타고 있기 때문이라는 "심리적인 일체감", "심리적인 일관성" 때문에 모든 것이 용서된다. 물론 처음에 이런 현상을 겪게 되면 도덕이나 기타 질서에 대한 감각이 혼란스러워지지만, 이게 누적이 되면 그냥 그러려니 한다. 사설이 좀 길어졌군여.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노짱은 지지자로부터 심리적인 일체감과 같은 것을 얻으려고 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면 자신들이 찍은 대통령이 어려움에 처해있다면, 내가 불법운행을 일삼는 버스를 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심리적인 일체감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 명백하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타고 있는 버스가 잘못을 하더라도 피해를 본 차량의 운전사에게 모두다 한결같이 경멸하는 눈빛과 심지어는 야유를 보낸는 것을 종종 본다. 즉 노짱의 사소한 도덕적 결함은 그를 찍어준 대중 또는 지지자에게는 결함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더욱 더 지지해야 되는 덕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몇몇 언론에서 재신임 투표를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과반수를 넘어서는 사람들이 재신임하겠다라고 응답했었다. 노짱의 조그마한 결함은 노짱의 고백 이후에는 노짱을 지켜야 할 이유가 되버린 것이다.

아이러니 한 것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대선때 정치 광고를 한 것이 이회창 후보라는 점이다. 버스 한대가 논바닥에 쳐박혀 있고, 사람들이 고생하고 있는데, 준법 운행을 하는 버스를 타고 가는 사람들은 처량한 듯이 그들을 쳐다본다. 이런 컨셉이었는데, 아마도 이회창이 되려고 했다면, 다들 내려서 사람들을 도와주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야 하지 않았겠는가 싶다. 아무튼 문제없이 질주하는 이회창 버스안의 사람들의 모습이 노무현 지지자들과 오버랩 되는 것이 기이하다. 나만 그럼 말고.

보수/수구 세력에게 압박하려고 했던 점
날이 갈수록 재신임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한나라당이나 보수 언론이 꼬리를 내린 것만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처음에는 어부지리로 어떻게든 5년을 기다리지 않고 빠른 시간만에 대권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라는 관점에서 접근했다가,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 크게 실망하고 후퇴를 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는 크게 두가지를 들 수 있다. 재신임 거부 이후에 벌어질 정국의 헤게모니를 쥘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들 내부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점은 최병렬 카드가 아직까지는 당의 모든 것을 쥐고 나가고, 내부에서 다음 대권은 누구라고 할 만한 세력이 없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그런 사태가 벌어졌을 때, 국가적인 어려움이 도래할 것인데, 그에 대한 대안이 없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뭐 박통이나 전통같은 위인이 있다면 어떻게든 대의명분을 걸고 군대라도 빼와서 혼란을 막겠다고 큰소리라도 하겠지만, 요즘 세상이 그게 먹힐 세상은 아니지 않는가? 그렇지 않아도 전반적으로 국가적인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데 이를 더욱 더 부추기게 되는 일에 환영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보수/수구 세력의 특징으로 이들은 어찌되었든간에 안정속에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혼란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겠다는 것이고, 변화는 아예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뭐, 자기들 밥 그릇 챙기는데는 앞장 서겠지만. 아무리 주판알을 굴리고 계산기를 두들겨 봐도, 자신들에게 유리할 만한 동기가 없었던 것이다. 만약 유리하다면, 민주당과 연합해서 헌법에 보장된 탄핵소추를 행사하면 되지 굳이 재신임 투표까지 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만약 재신임 투표를 선택한다면 수동적으로 끌려가야 할텐데, 당연히 지는 거 아닌가.. 아님 말구
어이했든지간에, 노짱은 보수세력에게 지금의 판을 깨고 싶으면 한번 해보자는 뻥꺼를 던진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뻥꺼인지 알면서도 자신들의 패가 메이드가 되지 않을 때 올인해야 한다면, 그냥 죽고 다음을 기대하는 것이 좋겠지. 

헌법적인 문제점들에 대해서
노짱은 사법고시를 통해서 판사를 거치고 변호사를 거친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무엇인가 국가적으로 중대한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있어 헌법적인 검토를 안 거쳤다는 것은 의외의 사건이 될 것이다. 난 검토했다는 쪽에 올인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 헌법에는 재신임투표에 대한 규정이 없다. 없는 것을 도입해서 하면 되지 않겠냐고 하지만, 이건 적어도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 문제고, 이 문제는 다시 헌법 개정 찬반 투표를 거쳐야 하고, 개정 헌법을 투표에 붙이기 위해서 국회에서 피터지게 쌈박질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게 어디 1-2년 안에 될 거라고 보는가? 뭐 가능하다는 쪽에 건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이다. 그냥 법을 만들면 되지 않겠냐고 제시를 할 수 도 있겠지만, 대통령이란 직함이 헌법에서 나온 것인데, 그 직함을 하위 법에서 내리게 한다면, 헌법소원감이다. 통과되기도 힘들겠지만, 헌법소원에 걸리면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가겠는가? 이런 전후 사정에 비춰볼때 냉정하게 검토해보고 재신임 발언을 한 것이라 추측된다. 올인~~ 아님말구..

기타 등등..
추리소설가도 아니지만, 추리를 해보았다. 어떤 근거도 없는 거고, 그렇다고 누구를 비난하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구를 치켜세우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이를 기회라고 해서 어떤 투쟁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지도 궁굼하기도하다. 부르조아 내지는 의회주의 정치질서 속에서 계속되는 계급 내부의 계층 간의 알력 다툼일 수 도 있는 하나의 커다란 헤프닝이 아니었을까.. 뭐 이런 생각을 이제야 내 뱉는다. 

아님 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