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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감자

2008년 경제위기라는 시절에 생각들



0. 97년의 보고서와 2008년의 아고라
1997년 11월5일에는 홍콩의 페레그린증권이 한국 경제에 대해 사형선고를 내렸다. 보고서의 제목은 '지금 당장 한국을 떠나라(Get Out of Korea. Right Now)'였다
2008년 7월 부터 다음 아고라에는 얼굴없는 미네르바가 한국 경제에 대해서 '닥치고 현금'이라는 글을 올리고,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있다. 1997년 처럼 환률은 치솟고, 주가는 하락하고, 게다가 세계 경제까지 위기에 휩싸였다.

보고서가 제도권 금융계에서 나온 것과 미네르바가 비제도권 게시판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지만, 보고서의 제작자가 외국계 증권사라는 점과 미네르바가 과거 금융권에 있었다는 점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금융과 경제에 대한 '정보'의 유통과 소통이 얼마나 막혀있으며, 금융권 종사자들이 스스로 자기 검열과 통제를 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97년에도 2008년에도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정보라고 하는 것이 특별한 정보가 아니라,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금웅 종사자들이 다 접할 수 있는 정보였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보고서와 게시물을 두고 정부는 부인하기만 한다는 점이다. 며칠전 이 나라 대통령이 외국에서 '전대미문의 위기'라고 하던데, 이제 인정한다는 것인지 참 두렵다. 시장의 장점은 시장을 통해서 가치에 대해서 가격 형성이 투명한 정보를 기반으로 할 때만 나타난다는 점이다. 무엇인가 감추고 속이는 형태를 시장이 보이면 시장은 기능을 상실한다. 자유주의를 선호하는 것과 시장경제를 신념으로 한다는 것이 명확하게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과 악수하는 이명박

좌파 대통령으로 유명한 룰라와 우파인 이명박대통령이 11월 19일 만났다고 한다. 그런데 제목은 '우파 실용주의자'와 '좌파 실용주의자가' 만났다고? 지랄..

국내 우파들이 룰라를 비롯한 좌파들을 가리키며 얼마나 욕을 쏟아부었는가? 포풀리즘이니 .. 그리고 국내의 좌파에 대해서는 아직도 마녀 사냥이 행해지고 있다. 국사교과서가 좌편향이라면서 바꾸겠다고, 과거 역사에 대해 바로잡기를 하는 많은 위원회들도 없애겠다고 하고, 경제경과서도 좌편향이라고 하는데. 그런데 어떻게 좌파의 상징인 브라질의 룰라와 손을 잡고 악수까지 하고, 협력하겠다는 것인가? 국내에서는 좌파는 있으면 안 되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거 같아보이면 국제 관계에서는 좌파는 손이라도 잡아야 하는가?


2. 왜 펀드와 주식에 장기 투자를 이야기 할까?
2007년 말 코스피 지수 2000을 돌파했는데, 어느 덧 1000을 놓고 왔다 갔다 한다. 그런데 모든 금융권이 1800에서도, 1500에서도 1200에서도 이제 반등한단다. 이제는 장기투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100년 이래 처음있는 투자 기회라고 한다. 앞에서도 봤듯이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2008년의 사태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고, 위기에 대해서 알던 사람들일 것이다. 그 위기 관리의 일환이 펀드에서 돈이 빠져나가서 수급으로 올려놓은 주가가 떨어지는 사태를 막고 싶은 것이다. 펀드런이 발생하면 쏜쓸 겨를이 없다. 펀드 5년 투자 수익율 50%라면, 은행 연이율 7%에 비해서 총 15% 차이다. 아무리 복리를 내세우고, 리버리지를 이야기해봐야 잃는 것은 잃는 것이다. 대세하락기에 원금 손실까지 발생하는데 빼지말라고 한다. 펀드에 미치라는 이야기다.

펀드 가입사와 운용사는 룰루랄라다. 투자자들의 돈을 불리면 불리는 만큼 인센티브를, 잃으면 계약한 투자 보수를 받는다. 투자를 대행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잃지 않는다. 투자는 투자자의 책임이라고 주장한다. 이 얼마나 무책임한 이야기인가. 완전 룰루랄라다. 그렇다. 본질은 투자를 대행하는 투자사와 가입시켜 준 곳은 어떤 상황에서도 불리하지 않다. 단지 당신이 손해 본 원금이라도 빼내겠다고 달려가면, 대다수 종사들이 일자리를 잃게된다. 회사도 문 닫는다. 그게 두려울 뿐이다. 경제가 망가지든, 원금이 쪽박되던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12-18개월 후면 다시 경기가 살아나서 올라갈텐데. 그때까지만 순박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장기투자, 리버리지 효과"


워렌 버핏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제 1원칙은 돈을 잃지 마라. 제 2원칙은 제 1원칙을 지켜라.


3. 튼튼하던 대한민국 경제는 이명박때문에 망가졌는가?

최근 인터넷을 보다 보면 이 모든 책임과 원인이 이명박 정권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주가가 떨어지고, 환율이 올라가고 집값이 떨어지면 고소한 듯이 냉소를 보낸다. 진짜 이 모든 것이 이명박과 졸개들 때문에 발생한 것인가?

좀 냉정해지자. 이 경제 위기에 대처를 잘못하고 있는 이명박은 분명 잘못하고 있다. 일부 경제 위기의 원인이 고환율 정책때문에 발생했으니, 일부 원인도 제공했다. 그러나 현 위기의 대부분 원인은 이명박 이전에 잉태되었던 문제이다. 이명박이 정권을 잡자 마자 집값이 치솟았나? 은행의 부실이 2008년도부터 시작되었나? 올해 1,2분기에 기업들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하던데, 그 장사를 2008년 부터 준비해서 시작한다고 생각하나?

대부분 노빠들은 이 모든 것이 이명박의 책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외환보유고와 주가지수를 들먹인다. 그렇다. 외환보유고 2000억달러를 넘게 많은 정권은 노무현이다. 주가지수 2000을 넘긴것도 노무현이다. 졸라 운 좋은 대통령이었겠다. 우리 경제의 40% 이상이 수출에 의존하고 있고, 코스피와 다우지수의 연동이 강하게 되고 있는데, 우리가 잘나서 올라가고 쌓인 줄 아나 본데. 미국의 서브프라임등 도덕적 해이에 의한 거품경제의 효과를 본 것 뿐이다. 기업과 은행의 체력이 얼마나 깍였는지, 그들을 제대로 감독 못했는지에 대한 결과가 나오고 있을 뿐이다. 거기다가 헛발질 하는 만수 브라더스가 있어 설상가상일 뿐이고. 25일 뉴스를 보니, 상장사들이 대부분 현금자산을 쌓아두고 있는데, 단기차입금이라고 하더라.

노무현이 한번 더 대통령하자고? 천재 노무현이면 해결할 수 있다고? 수출할 곳이 없는데, 이미 은행들은 단기 외채 함정에 빠져 있고, 그 많은 엔캐리로 땡겨온 PF 부실은 어떡할 건데? 좀 정신 좀 차리시게.

몇 주전 100분 토론에 시골의사 박경철은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일부 사람들이 이 경제위기를 정권의 문제로 접근하는데, 대한민국이라는 정부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 경제위기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데, 고소하다고 냉소를 보내는 사람들 제발 정신차려라!

4. 은행은 왜 다시 부실해졌는가?
은행이 부실해진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금융 선진화를 내세우던 정책때문이다. 금융 선진화를 하려면 대형 은행이 나와야 한다는 논리에 따라 2006년도부터 공격적인 대출 경쟁이 벌어졌다(24일 KBS 다큐를 참고하라). 그래서 대출에 필요한 자본을 달러와 엔화로 땡겨왔고, 조단위의 PF도 경쟁적으로 제공한다. 그 여파로 부동산이 뜨거워진다. 각종 대출 규제가 개개인들의 투기에 대한 열망을 잠시 잠재웠다면, PF는 전국을 부동산 투기장으로 만든다. "아 저거 사면 대박이라는데..." 하는 각종 부동산 개발이 횡횡한다.

은행들이 영업방식 혁신과 위기관리 고도화등은 하지 않고 손쉬운 수수료 수입과 대출로 덩치를 키우면서 커진 문제다. 거기다가 일부은행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파생상품들을 팔아서 손쉬운 판매수입을 얻었다. 파생상품을 잠시 들여다 봤는데 너무 어렵다. 한미 FTA 이후 금융시장 개방에 따라 상업은행을 목표로 하는 은행들은 너도 나도 앞다퉈 파생상품을 팔았다.

이게 바로 새로운 금융이라고 노무현, 이명박이 떠들던 은행 업계의 선진화 결과다. 미네르바가 추천한 "무엇이 세계경제를 움직이는가"라는 다큐를 보면 영국이 20년 넘게 지금의 금융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우리가 개방과 함께 그런 런던이나 뉴욕 시장을 단숨에 따라 잡겠다는 원대한 꿈, 너무 멋지지 않나?


5. 시장주의자들이 외치던 시장자율은 잘 나갈때 하는 소리인가?
시장주의자라는 사람들은 항상 시장자율을 외치며, 관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그마한 법적 틀을 과도한 규제때문이라며, 그래서 경제가 기업이 성장하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법적인 틀을 바꾸겠다고 했다. 그래서 인수위 시절 이명박은 저 남쪽의 대불공단의 전봇대를 관치의 전형이라며 뽑아버리는 새로운 자율관치를 선보이지 않았던가?

다 좋다. 관치가 좋은지 자율이 좋은지 논쟁하지 말자. 적어도 시장자율을 외치던 사람들이 경제가 어려워지니까 자꾸 정부가 경기를 부양해야된다고 하고, 공적자금을 투입하라고 한다. 이건 이율배반이고 모순 아닌가? 작은 정부와 개입이 없어야 경제가 잘돌아간다고 하더니, 이제 경제가 어려워지니 정부보고 모두 다 책임지라고 한다면 시장주의자라는 시장자율은 외치던 사람들 말을 어떻게 믿니?

6. 구조조정이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는가?
정말 구조조정을 통해서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대규모 명퇴와 비정규직 계약 해지, 기업들간의 M&A를 통해서 이 난관이 헤쳐질까? 우리가 과거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기간동안 그 잘난 구조조정을 통해서 얻은 것이 무엇인가? 고용불안정성의 증대, 공기업과 금융기업의 신격화 말고 안정적인 사회 시스템은 없는 복지불안 시스템. 1000만에 가까운 비정규직 양산과 그들의 고용불안은 물론 소득의 양극화로 인한 사회 경제 시스템의 회전율을 낮추지 않았는가? 내수가 진작 되려면 골고루 평균에 가까운 수입과 지출이 있어야 하는데, 50% 이상이 평균에 한참 먼 88만원 세대가 되어가는데 미래는 커녕, 제대로된 지출이 있을 수 있다고 보는가?

현재 금융위기의 원인중 하나는 과도한 금융공학도 한 몫했지만, 기업의 덩치키우기를 통한 규모의 경제와 M&A를 통한 실적 부풀리기, 그에 따른 경영진에 대한 과도한 보상체계 등이 큰  원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의 경제위기 중 가장 큰 원인은 사회적 안정성이 깨진데서 비롯한다. 앞에서도 잠시 이야기했지만, 금융 종사자들 중 구조조정에 살아 남은 사람들이 과도한 경쟁속에서 고소득을 보장받고 있었는데, 이제 그들중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을지도 모른다. 공기업도 마찬가지고,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그럼 어떻게 되는가? 앞으로 더욱 신의 직장은 철옹성처럼 굳어지고, 나머지 사람들은 비정규직이 될 뿐이다. 사회적인 기회균등은 사라지고, 계층이 계급으로 고착화되고, 내수는 진작 될 수 없다.

사회적인 대타협 선언이 필요하다. 인위적인 구조조정이 아니라 서로 급여를 삭감하고 더불어 미취업자들을 일할 수 있게 더 포용해야 한다.  물론 경영진들은 웃기는 급여반납이 아니라 연봉 1원 선언을 해야 한다. 이미 배부를 만큼 부르지 않나? 급여반납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이고 선언의 문제이다. 연봉 1원이라는 것은 1차적인 계약 내용의 변경이다. 대략 20%의 급여를 삭감하고, 그 급여로 30-40%의 인원을 더 뽑을 수 있다. 대부분 신입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급여 수준이 낮기 때문에 줄어든 급여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 그냥 일자리 확대의 문제가 아니라 평균에 가까운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공기업, 금융업계, 대기업들은 국가의 도움으로 버티는 곳 아니었던가? 그들은 과독점과 사회평균 이상의 과도한 이윤을 보장받고 있다. 그런데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