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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감자

2012년 대통령 선거 관전평



선거가 끝난 2-3일 내에 정리하려고 올리려고 했으나,

중간에 부정개표 논란이 있어, 법적시효 마감일을 기다렸다 올립니다.

어쨌든 법적인 절차가 다 끝나야만 관전평이 되겠지요.


역사상 처음으로 과반수를 넘는 득표를 한 대통령 당선자가 나왔다.

당선자가 헌정 사상 최초의 여자라서 놀랍기도 하지만,

당선자의 부친이 친일 경력과 쿠테타와 독재와 산업화의 공신이자,

총탄에 운명을 달리한 박정희라서 더욱 놀랍고,

반대편의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이 되고 있다.


2012년 4월 국회의원 선거 관전평을 쓴 적이 있는데,

대통령 선거 관전평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안철수 변수와 진보의 몰락과 이정희 돌발 행동,

세대간의 충돌, 노쇠한 세대의 승리

이런 점들이 2012년 충선과 대선이 달라졌을 뿐 크게 다르지 않네요.


국회의원 선거 관전평에 쓴 내용들은 다시 다루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중복된 내용이 존재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먼저 보시길.

2012년 국회의원 선거 관전평

1. SNS라는 우물에 갖히다
2. 어깨를 내어주고 가슴을 찌른다
3. 전투는 내가 원하는 곳에서
4. SNS와 이외수
5. 투표 참가 독려와 투표의 품격
6. 김용민과 막말 파동
7. 박근혜, 친일파이자 유신의 잔당인가?



0. 투표하면 이긴다는 야권 논리의 패배

투표하면 세상을 바꾼다.

투표하면 이긴다.


투표해야 한다고 온라인과 시민사회 곳곳이 뜨거웠다.

연예인들과 스타급 정치인들이 앞다퉈서 투표를 독려했다.

결과는 참혹한 패배로 돌아왔다.


이전에도 이야기했듯이 투표율 몇 %가 되면 XXX를 하겠다처럼

스스로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을 하면 안된다.

또한 투표하면 세상을 바꾼다는 사람들의 말에 "정권교체"가 깔려있다.

스스로가 원하는 바를 숨기는 행동이다.

사람들은 그러한 행동을 곱게 보지 않는 듯 하다.


분명한 것은 예전보다 높은 투표율을 보여줬지만,

투표가 세상을 바꾼다고 떠들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다른 이야기를 한다.


"가끔씩 궁금한데 나치 치하의 독일 지식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유신 치하의 지식인들은?"

"대한민국을 포기한다. 이민가겠다."


선거 전후로 말을 바꾼 사람들은

왜 말을 바꿨는지 명확하게 입장을 밝혀야 한다.


이전까지는 높은 투표율이 야권 또는 민주세력의 승리를 보증했지만,

이젠 그렇지 않게 되었다.


왜일까?

분명히 이전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다른 무엇인가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계속 질 것이다.



1. 승리한 대통령 후보의 특징

경영학이나 성공학의 책들을 보면

성공한 기업이나 개인을 모아서 분류하고

공통적인 특징을 뽑아내서 설명하는 방법을 취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방법론은 결과론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성공의 요인을 설명하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 성공한 사례들은 실패한 사례로 다시 도마위에 올라간다.


1997년 김대중부터 2012년 박근혜까지

승리한 후보와 떨어진 후보들간에 차이점은

살아온 인생 역정의 이야기와 감동에 특징이 있어 보인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모두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들이 있다.

고난과 역경을 헤쳐왔고

삶의 이야기를 통해서 미래에 대한 비전을 설득 가능한 감동을 심어주었다.

명박옹을 싫어들 하겠지만, 그도 파란만장하다는 사실은 어쩔 수 없다.


패자였던 이회창, 정동영, 문재인의 삶은

온실속의 화초이거나 엘리트 코스로 평탄한 삶을 걸어왔다.

대법관, 앵커, 변호사 말고는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찾기 힘들다.

인터넷에 보니 비슷한 의미로

갑뚝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놈은 안된다는 말이 있던데,

그와 비슷한 맥락이다.


2. 제왕적 대통령은 아니다고?

출마한 후보들 모두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을 버리겠다고 한다.

그럼 대통령을 안 하면 될 일이다.

헌법에 명시한 대통령의 권한을 보면 제왕 그 자체다.

복잡해지는 사회에서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 처리하라고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한을 준 것이다.

문제는 위임받은 권한을 제멋대로 불공정, 불공평하게 사용하는 것이지,

권한 자체가 아니다.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고,

행정부의 수반이고,

국군을 통솔하고,

외교에서 국가를 대표하고,

수많은 행정부와 그 산하 단체에 대한 임면권을 가지고,

심지어 사법부의 대법관을 임명하고,

기소권을 독점하는 검찰총장을 좌지우지하고,

특별사면으로 범죄자를 풀어줄 수도 있다.

이 정도의 권한이면 황제나 왕에 버금간다.

즉 제왕이다.


사람들이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크거나 잘못 운영한다는 말의 의미를

권한을 축소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권한을 축소한다면 그 축소한 권한은 또 누군가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일례로 안철수는 대통령이 행사하는 약 2만개의 임명권을 줄이겠다고 했다.

줄이는 거야 법을 통해서 권한을 축소하면 되지만,

누구에게 넘겨줄 것인가는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못할 것이다.

권한을 넘겨받은 사람이 공평, 공정하게 권한을 행사한다는 보장이 없다.


대통령은 제왕이어야 한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제왕적 권한은

공정하고, 공평하게 사용되어야 하고,

이를 감시할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권한이 제왕이 아니라면,

대통령을 뽑으면서 기대하는 일들이 불가능하다.

한편으로 제왕으로써 시대 정신을 구현하는 대통령을 기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소탈한 대통령을 원하는 이중성이다.


3. 박근혜와 유신, 유교적 가치, 연좌제

박근혜를 줄기차게 괴롭히던 네거티브가 있었다.

유신, 인혁당 사건 등 아버지 박정희가 저지른 만행을 사과하라고 했다.

나는 박근혜가 노무현처럼 당차게 사과하지 않고 돌파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결국에 사과를 했다.


박근혜가 유신과 인혁당을 사과하는 것은

아버지를 부정하는 패륜을 저지르라는 다그친 셈이다.

노무현때도 장인의 빨갱이 문제로 이미 정리된 이슈다.


박근혜는 사과를 해서 얻는 이익보다 손해가 크다.

박근혜 지지자들의 상당수가 박정희, 육영수에 대한 향수에 바탕을 두고 있는

나이 지근한 어르신들인데,

그들은 자나깨나 효와 요즘 젊은 것들을 이야기하며

세상이 어떻게 되려나 하는 이야기를 한다.


어쨌든 박근혜는 사과를 했고,

사과의 과정에서 고의인지 역사적 의식이 떨어졌는지,

인혁당 사건에 대해 잘못된 발언을 해서 사과를 받는 상대의 원성을 샀고,

사과의 진정성에 대해서 의심을 받는 처지에 이르렀다.

나는 사과에 진정성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박근혜가 사과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

사과를 받는 상대방과 사과를 종용했던 집단들이

어느 정도 선에서 사과의 진정성을 인정해주었을까?

아무리 박근혜가 사과를 한다고 한들,

대선 후보에서 사퇴하지 않는한 진정성으로 시비를 걸었을 것이다.


박근혜와 노무현에게서 선대가 행한 일들에 대한 추궁은

"대한민국" 헌법이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연좌제"로 몰아부치는 반사회적인 네거티브다.


박근혜에 대한 유신을 들먹거리며 사과를 이야기한 사람들이

민주주의와 법질서를 이야기하던 일명 "민주", "진보" 세력이었다.

이게 정말로 가슴 아프다.



4. 감동이 없는 선거 운동

주변에 민주와 진보를 위해 투표를 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 주변에 펀드에 가입한 분은 딱 한 분 뿐이다.

더 슬픈 일은 문재인 캠프를 위해 자원봉사를 하는 분들이 없었다.


2002년을 떠올려보면, 노무현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던 많은 분들이 있었다.

포장마차를 끌고 전국을 돌아다닌 분부터,

지하철, 버스정류장에서 노무현을 외치던 시민들.


2012년 대선에서는 아침에 박근혜 선거운동원도 보기 힘들었지만,

한번도 문재인을 외치는 선거운동원을 보지 못했다.

내가 격전지가 아닌 곳에 살아서 인가 하기에는 조금 그렇다.


2002년의 노무현의 감동이란 사람들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난 아니다)

하루 종일 노하우와 노사모 사이트의 게시물을 읽으면서

한숨도 못자고 눈물 흘렸다고 이야기하며,

선거운동을 위해서 할 일이 없겠냐고 방법을 찾아 움직이던 사람들.


2012년에는 감동을 주고 전달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단지 아고라와 몇몇 사이트, 그리고 SNS에서

메아리는 없고 RT만 있는 공허함.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느낀다.

'저 사람들의 주장은 말 뿐이구'

또는

'주장과 일치하는 행동이 있구나'


문재인 캠프의 캠페인에 감동이 있었는가?

지지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는가?

지지자들이 시민에게 감동을 주는 행동을 했었는가?


5. 내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없고 상대가 되면 안 되는 근거만 잔뜩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딱 하나였다.

박근혜가 되면 안되기 때문에 문재인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근혜쪽은 다양한 이유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수, 북한, 생계, 안전, 대한민국, 불쌍해서, 믿을 수 있어서, 여자여서 등등.

반대로 박근혜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박근혜가 되면 안되는 이유이고,

삼단논법 콤보로 이어져 문재인이 되어야하는 근거가 되었다.


도대체 문재인의 정체성은 무엇이었을까?

난 모르겠다.

문재인이라는 정치인의 삶과 비전과 정치 신념과 포부가 무엇인지.


내가 꼭 해야 하는 간절하고 설득력 있는 이유가 없이,

상대를 인정할 수 없으니라는 논리는 이제 그만 나왔으면 한다.


6. 세대간의 전쟁, 부모를 가르치려 대든 자식들

이번 대선은 세대간의 전쟁이었다고들 한다.

삶이 고달픈 50-60대와 희망이 없는 20-30대 간의 전쟁이었다고 한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

이 말에는 앞에서는 져주고, 뒤에서는 반대로 행동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사활을 걸고 전화로 문자로 한표 한표 챙겼다는 게시물을 보면,

전화통을 붙잡고 부모, 친구, 동료를 설득했다고 한다.


부모는 긴 정치 전화가 귀찮다.

평소에는 목소리 듣기 힘들고,

전화해도 바쁘다고 끊는 자식이,

2번을 찍어야 한다고,

박근혜는 절대 안된다고 가르친다.


마실 나가거나, 노인정에 나가면

"불쌍한 박근혜가 되어야지" 하는 아낙들이 있는데,

들어보면 아낙들 말이 맞는 것 같은디...

아무래도 다른 세상인 것이다.


부모 세대를 가르치려고 대들면 안된다.

부모 세대가 자식 세대를 위해서,

'그래 이번에는 너를 위해서 찍으마'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감성적인 호소가 어울린다.

그 전에 선거때만 되면 반짝하지 말고 평소에 부모님께 잘 하시길.


7. 노빠들의 설계, 합리성의 몰락

이번 대선과 2007년 정동영 선거는 같은 면과 다른 면이 있다.

한나라-새누리당 후보의 강력한 당선 가능성과 승리가 같은 점이라면,

민주진영에서 다른 점은 정동영에 대해서는

차라리 기호 0번을 찍겠다고 비토한 세력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정동영은 500만표 차라는 완패를 뛰어넘는 참혹한 패배를 당했다.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얻은 지지율은 정동영 후보를 기준으로 하면,

기준+노빠+기권+2MB+안철수 만큼 얻었다고 보인다.

노빠가 차지하는 비중은 투표율 기준으로 5%로 보인다.


노빠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에 대해서는

온갖 수식어를 가져다 붙이며 이슈를 선점하고 불을 땡긴다.

반대로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아닐경우에는

나 몰라라를 뛰어넘는, 비토를 과감하게 한다.


노빠들은 자신들이 설계한 선거 구도를 이야기한다.

그 설계대로 해야 이길 수 있기 때문에 노빠 후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쩌다 한번 자신들의 설계와 승리가 우연히 맞물린 것을,

자신들의 합리성의 승리라고 자화자찬한다.


이제 그들은 한국을 포기한다고 한다.

이제 그들은 대한민국을 떠나 이민을 가겠다고 한다.

이제 그들은 박근혜 밑에서 5년 더 개고생을 해봐라고 한다.

이제 그들은 복지와 대학등록금에 대해서 울고불고 하지 말라고 한다.


모든 것이 그들 중심으로만 사고하고 평가한다.

이런 집단들은 사라지는게 좋다.



8. 말도 안되는 토론 - 합리냐 감성이냐?

박근혜-문재인-이정희 3자 토론은 코미디였다.

3자 토론만 놓고 본다면 대선 후보 3명 모두 자격미달이다.


2번에 걸친 3자 토론을 통해서 확연하게 들어난 것은 이정희의 인신 공격이다.

이정희가 진실을 제대로 말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정희가 말한 진실로 박근혜가 궁지에 몰렸던 것도 사실이다.

지켜본 많은 어르신들은 이정희를 혐오하면서 박근혜를 동정하게 되었다.


젠장.


진중권, 변희재처럼 말로 사는 사람들 때문에,

토론이 상대방을 짓밟는 일로 희화화 되었다.

토론을 통해서 합의와 타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말빨로 이겨내는 일이 일상화 된 것이다.

진중권류의 토론은

상대방을 비실비실 쪼개고 웃음거리로 만드는데 탁월하지만,

얻는 것은 없다.

토론을 하는 것은 상대방을 인정하는데서 출발한다.


9. 이정희 - 생계형 종북의 몰락

대통령 후보 토론회에서 이정희는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서" 출마했다고 서슴없이 말했다.

박근혜가 당선되었으니 이정희는 반성문을 써야 할 듯 하다.

끝까지 완주할 것 처럼 보이던 이정희는 예상대로 사퇴했다.

27억만 가져갔다.

법이 정한 것이라고 하니, 그렇다고 치자.


이정희가 토론회에서 보여준 표정은

감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다.

상대를 구석으로 몰아붙이는 집요함,

핏발어린 싸늘하게 쏘아보는 눈빛,

자신의 말만을 전달하기 위해 기품없는 말들.



"감정은 ‘생각’보다 빠르게 일어나고, ‘이성’보다 강력하다" 는 이모셔노믹스의 내용을 한번쯤 돌아보면 좋겠다. 메러비안 법칙으로 알려진 메러비안의 연구는 의사소통의 효과에서 비언어적 의사소통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이다. 서로 대화하는 사람들을 관찰한 결과, 상대방에게 내용을 이해시키는 데 있어서 목소리는 38%, 표정은 30%, 태도는 20%, 몸짓이 5%의 영향을 끼치지만, 말하는 내용(어휘) 자체는 겨우 7%의 비중밖에는 차지하지 않는다.

http://en.wikipedia.org/wiki/Albert_Mehrabian

http://insahara.tistory.com/218


꼭 명심해두시길.

.


이정희와 통합진보당 부류는 이념적 종북이 아니라 생계형 종북이다.

생계형 종북은 좌파도 진보도 민주도 아니다.

그들이 운동권과 정치권을 멤돌며 오랫동안 말해왔던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을 목숨처럼 생각하고 받아들인 후배 활동가들,

이 모두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절박함이 보인다.

대통령 후보에 입후보 한것도 생계를 위한 것이리라.


지난 총선에 보여준 엄청난 패악질은

앞으로 생계형 종북이 자리잡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해준다.

기를 쓰고 지켜낸 이석기, 김재연 금배지가 끝나면,

처절한 고난의 행군을 이어가리라.



10. 심상정, 노회찬 - 진보의 몰락

심상정, 노희찬이 있는 진보정의당은 대선 후보를 내지도 못했다.

더 우스운 꼴은 당의 결의를 무시하고 후보 2명이 무소속으로 나왔다는 점이다.

두 후보 모두 0.2%라는 우스운 득표율을 얻었다.


90년대 양지로 나온 진보가 20년 동안 해 놓은 일이 겨우 0.2%.

이제 진보는 앞으로 기대하기 어렵겠다.

앞으로 10년을 다시 노력해야 10%대나 될 수 있을까?


11. 단일화는 이제 그만

1992년 김영삼-김대중 단일화

1997년 김대중-김종필 단일화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2007년 ??

2012년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야권은 단일화가 없으면 대선에 나가지 못하는 세력이라 보인다.

20년을 넘게 단일화만 찾으면 사람들은 물리는 법이다.

계속해서 단일화해야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면에는

평소에 잘못해왔다는 반증이다.


내부에서 지도자를 키우지 못했고,

선거에 유권자와 지지자를 잡아당길만한 정치도 못했다는 반증.


단일화를 많이 지겨워한다.

단일화없이 선거에 나서길 바란다.


우스개 소리.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의 승리의 제1 공신은

'스티브 잡스'가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발전한 기술을 중장년층, 노년층이 받아 들이기데 시간이 걸리지만,

기술을 받아들이면 사회적으로 공평하게 이용 가능하다.


스마트폰과 카톡이 20-40대 젊은 세대만의 특권이 아니었다.

여러 신문 보도와 기사를 통해서 2-3시 이후에

투표를 권유하는 카톡이 중장년층, 노년층에도 넘쳐났다고 한다.

혁신이 사회 전체적으로 수용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젊은층과 민주당만이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점령하면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한 것이다.

"사람에서 기술로, 다시 사람으로"라는 SK 광고가 떠오른다.


어쨌든 이번 선거를 판가름한 중요 요소에는 "스티브 잡스"가 들어 있다.

우스개다.


추적자를 추억하며

악의 화신 "강동윤"을 물리치기 위해 "투표하면 바꿀 수 있다"는

눈물나는 감동적인 장면을 보여준 드라마 "추적자"


이 추적자 막판에 투표하러 나서는 많은 국민들을 보여준다.

내 기억에는 젊은 세대보다는 중장년층 이상이 많았다.

출연진 섭외가 어려워서일까?

왜 추적자에서는 시장상인, 어르신들을 더 많이 보여주었을까?


마치 이번 선거의 막판과 비슷하게 겹치는 장면이다.

내가 본 드라마의 모습을 대선에 맞게 재편집하고 있는 것일까?

드라마 기획을 기획한 것일까?


마치며.

이게 아마도 마지막 정치에 관한 글이 될 듯 하다.

이번 대선을 통해 분노와 저주로 가득찬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반세기 동안 반정립을 통해서 정체성을 확보하고 있다.

반새누리당 = 민주세력 이라는 강력한 반정립 공식을 가지고 있다.

여지껏 자기정립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선거 결과때문에 아주 좋은 질문을 주고 받은 적 있다.


"민주-진보-좌파는 어떻게 다른가?"


잘 설명하지 못하겠다.

나의 정체성도 묽어지고 있나 보다.

적어도 몇 년전까지는 진보-좌파 임에 틀림없었으나,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내 위치를 알려줄 나침판이 빙빙 헛돌고 있다.


또 한번의 선거가 끝나고,

사람들은 또 다시 풍진 세상으로 돌아갔다.

또 다시 선거가 찾아올 것이다.

그때는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 세상으로 뛰어들었으면 한다.


앞으로 남은 기나긴 5년,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아님말고